[2009 한국의 모색 - 좌우를 뛰어넘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조선일보
  • 김기철 기자
    입력 2009.01.28 03:02 | 수정 2009.01.28 09:35

    "촛불집회로는 共和的 이상 실현 어려워"
    다수 의견 수렴하려면 합리적 토의 거쳐야
    언어가 타락한 시대… 公的 장소에선 예의를

    김우창 교수는“자기 정당성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지식인들의 공론장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김우창(金禹昌·72) 고려대 명예교수는 학문적·정치적 입장에 따라 편가르기가 심한 우리 학계풍토에서 드물게 폭넓은 사유와 균형감각으로 존경 받는 인문학자다.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 철학, 정치경제학, 미술사, 건축, 물리학까지 아우르는 그의 학문과 발언은 특정 학맥(學脈)을 꾸리지 않았음에도, 좌·우 양쪽 진영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신중하고 정치한 절차로 사유하고 현대 세계의 문제들을 성찰해온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로 불린다. 시사계간지〈비평〉편집인으로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김우창 교수는 지식인 사회 공론장(公論場)의 위기부터 ‘촛불집회’에 대한 생각까지 성찰적 발언을 쏟아냈다.

    ◆“정당성에 대한 확신 지나치면, 상대방을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


    ―민주화 이후에 합리적 토론의 공간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식인들의 토론이 합리적 분석보다 편가르기가 주된 풍조가 된 이유를 뭐라고 보는가.

    “민주화 이후 언론 자유가 확보됨으로써, 여러 이론이 자유롭게 공표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자기 확신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면, 그것을 부인하는 상대방을 타도하는 쪽으로 나간다. 관용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토론의 상대방을 ‘좌빨’, ‘극우’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구체적 현실과는 거리가 먼, 상투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은 언어가 타락한 시대다. 공적(公的)인 장소에서는 예의를 갖춰서 얘기해야 한다. 극단적 용어를 쓰는 것은, 그래야 참신해 보이고, 회색분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를 보면, 부시 대통령과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용과 협력에 감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와는 다른 점이다.”


    ◆ “상대를 밀어붙이면 넘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몇 달 전 나온 저서《정의와 정의의 조건》에서는 역사와 사회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이데올로기의 위험을 강조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진행형인 이슈다.

    “경제성장만 하면 잘 살게 된다는 우파의 주장은 환경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분배를 제대로 하는 정권만 수립되면, 잘 살게 된다는 좌파의 주장도 현실적이지 않다.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막대한 권력을 전제로 한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그렇게 간다고 주장했다. 조금만 행동하면 모든 것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사회를 딱딱한 나무 판처럼 생각하고 밀어붙이면 넘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거리 의견에만 의존해서는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

    ―작년 6월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거기서 새로운 민주정치의 활력을 발견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활력이 아니라 그것이 바르게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라는 칼럼을 썼다. 〈 ‘거리의 정치’, 비정상과 일탈 아니다〉(창비 주간논평)처럼, 진보좌파 지식인들은 ‘촛불집회’를 이상화하는 분들이 많았다.

    “거리집회는 민중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을 정상적인 행위로 볼 수는 없다.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려면, 합리적 토의 과정과 실현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 다수 의견이 중요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수렴하느냐가 문제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가 많이 불렸다. 거리집회는 '민주'를 나타내지만, '공화'적 이상을 실현하기 어렵다. 공화는 민중의 다수이익을 초월하는 공(公)적 이익을 가리킨다. 촛불집회로 민중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으나 공화로 흡수되려면절차와 과정이 있어야 한다. 거리의 의견에만 의존해서는 안정되고 일관성 있는 체제가 성립할 수 없다.”


    ◆“정치같이 괴로운 일을 왜 아이들에게 떠넘기나”

    ―중·고생 등 어린아이들이 촛불집회에 나오는 것을 반대했는데, 4·19때는 학생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같이 괴로운 일을 무엇 때문에 아이들에게 떠넘기는가. 어린 학생들은 미성년자다. 자기 판단에 따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민주정치에 참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게 함으로써 더 높은 삶의 이상을 배우고 익힐 여유를 주는 게 좋다.”


    ◆“思考의 전통이 있는 곳이 문명 사회”

    ―우리 사회에는 자기 진영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변절’이나 ‘전향’ 같은 꼬리표를 붙이는 분위기가 있다. 성찰적 발언이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전통적으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 있으면 즉각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행동이 사람의 삶의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문명사회에는 행동과는 별개로 사고의 전통이 있어야 한다.”


    ◆ “우리 역사적 경험, 토론 공간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지식인 사회가 도리어 사회 다른 조직보다 관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독립이나 민주화, 산업화처럼 국가적으로 당면한 과제가 너무 자명했기에 토론 공간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성리학 전통도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다. 단테는 《신곡》에서 자신이 지옥에 위치하게 한 사람들에게도 상당한 동정심을 드러낸다. 너무나 딱하게 생각하여 기절하는 경우도 있다. 성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작가와 지식인은 사회 통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행동의 장(場) 뒤에 그것을 끌어안는 관용의 장(場)이 있어야 한다. 이런 다층적 이해가 우리 사회엔 부족한 것 같다.”


    ◆“상투어는 진실을 은폐한다.”

    ―진보 또는 진보 세력을 자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개념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진보나 보수는 잠정적, 일시적으로 쓰는 용어일 뿐이다. 모든 개념적 언어는 일시적인 설명의 언어이다.이것을 굳혀서 현실을 대체하는 것은 잘못이다. 상투어는 편리하면서도. 사실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 “市場 부정하면 인간의 자유까지 위험에 빠져”

    ―‘진보’ 지식인들은 대체로 시장에 대해 부정적이다. 김 교수께서는 《정의와 정의의 조건》에서 시장의 정치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장의 역기능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역기능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아니라 시장 기능 자체를 부정한다.  더 섬세하게 생각해야 한다. 시장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면 공산주의 를 해야 한다. 국가에서 상품 생산과 소비를 관장하면 된다. 국가에서 생산과 소비를 관장하면 효율성에 문제가 있고, 인간의 자유까지 억제하게 된다.”

    (김 교수는 《정의와 정의의 조건》에서 시장이 정치적 자유를 낳는다고 썼다. ‘시장의 의미는 선택의 자유를 원칙으로 한다는 데에 있다. 또 이 선택의 자유는 경쟁을 촉진하고, 경쟁은 가격의 억제와 생산품의 다양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삶의 필요와 편의가 필연의 중압을 벗어난 공간에서 확보될 수 있다는 희망이 시장의 이상에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공간에서 권력의 개입이 배제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18~19쪽)


    ◆“과거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지식인 사회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보수·진보, 좌·우의 소통보다, 단절이 더욱 심각해졌다.

    “인문과학은 가치 학문이지만, 사실을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실은 일정한 관점과 원근법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사실과 이론 사이에는 주고 받는 관계가 있어야 한다. 사실을 보려면 이론이 있어야 하지만,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이론으로 사실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사실 존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론이나 사실적 정당성을자기 정당성으로 만들어서도 곤란하다.과거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옳지 않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인데, 미래의 행동에서 이론과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것이 내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목표는 모두가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보다 너그럽고, 관대하게 생각해야”

    ―한국 진보·보수 지식인의 약점은 뭐라고 보는가.

    “예를 들면, 이명박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면, 그 이유를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  진보가 거기에 반대하려면 사회전체적 관점에서 어떻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보다 너그럽고, 관대하게 생각해야 한다. 용산 철거민 사건으로 사람이 죽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누군가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러나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포괄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의 밑바닥에 들어있는 것은 이윤 추구의 자본주의 때문이다.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태도부터 문제이다.”


    ◆“큰 것만 생각하고, 작은 규칙도 지키지 않는 정치”

    ―이해 관계가 충돌했을 때,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지식인의 책임은 없을까.

    “국회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합리적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해결해야 겠다는 입장이 생기게 된다. 또는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통하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영국 국회에선 여야 가운데 선(線)이 있어서 넘어가면 안 된다. 의원은 상대방이 아니라 의장에게 이야기 한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런 것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크게만 생각 하고, 작은 규칙도 안 지킨다. 다수 의견을 어떻게 합리적 토론 과정을 거쳐 수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노벨상 작가가 나오려면 넓게 생각하는 작가가 나와야 한다. 그 사람 관점에선 나쁜 사람이 없어야 한다. 독일 작가 괴테와 실러 가운데, 쉴러는 정치적 정열이 훨씬 강하다. 괴테는 너도 좋고, 또 다른 너도 좋다는 견해다. 작가는 가장 넓은 포용적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가장 넓게 보면,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 실현되는 사회가 좋은 것이다. 거기로부터 안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하면 갈등이 생기고 모두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를 일단은 전제할 수 있어야 한다.”


    ◆“상투적인 기사가 사실 전달을 방해”

    ―현재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실성이 부족한 것이다. 상투화가 너무 심하다. 신춘문예 심사 때, 심사위원들이 원고를 들춰보는 사진을 연출한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심사위원들은 이미 원고를 다 검토하고 왔어야 한다. 그 자리에 와서야 원고를 들여다볼 리 있는가. 기사가 상투적이 되면, 사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을 방해한다. 예를 들면, 한국을 처음 찾은 서양인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서양인이 한국 문화에 푹 빠졌다고 쓰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 “나는 신석기 보수주의자”

    ―스스로를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김호기(연세대) 교수가 한 번은 전화를 걸어와 나를 중도 좌파로 쓴다면 적절한가 하고 물어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질문을 질문으로 답했다.사람은 먹어야 하고 잘 공간이 필요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폴 굿먼(Goodman)처럼 신석기 보수주의자이다. 공산주의자는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도록 했는데, 사회주의적 양심이 가족관계를 초월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아버지가 우선이라고 봤다. 이런 원초적 관계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도 신석기보수주의자다. 아마 많은 진보주의자도 이런 근본적인 삶의 필요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일 것이다. 또 무조건 경제 발전만을 내세우는 보수주의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사실 진보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우창 석좌교수는…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강의했고, 1974년 고려대로 옮겨 대학원장을 지냈으며, 2003년 정년 퇴임했다. 그의 전공은 영문학이지만 철학, 정치경제학, 미술사, 건축, 물리학까지 아우르는 학문과 발언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김 교수의 첫 저작이자 대표작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7년)은 문학 청년, 또는 인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들춰봤을 것이다. 윤동주, 한용운, 김기림, 정지용 등 우리 작가의 해석에 하버마스, 메를로 퐁티 같은 서양 철학이론을 끌어들여 한국 문학을 보편적으로 승화시킨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저작으로 《지상의 척도》《시인의 보석》《법 없는 길》《이성적 사회를 향하여》 등이 있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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