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전함 야마토'

입력 2009.01.26 16:50 | 수정 2009.01.26 16:57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기술력이 응집된 세계 최대 전함
미군에 의해 해저 350미터에 수장된 선체 인양 움직임
야스쿠니신사와 함께 과거 회귀의 상징으로 자리할 듯

야마토 전함 / 조선일보 DB

-일본에서 23일 재미있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도중 침몰된 전함 야마토(大和)를 인양하는 준비위원회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아니라 야마토를 건조한 히로시마현 구레(吳)시의 민간 경제계가 앞장 섰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구레시는 일본 제국시대 때 해군 조선소가 있던 것입니다. 그 때는 ‘구레해군공창’이라고 불렸죠. 여기서 나온 최고 걸작인 ‘야마토’를 인양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구레 경제인들의 생각인가 봅니다.

-야마토는 제국 일본을 상징하는 전함입니다. 주력 전투기 ‘제로센’이 제국 일본의 속전속결주의에 따라 제작된 하늘의 상징이었다면, 전함 야마토는 제국 일본의 대함거포주의에 따라 만들어진 바다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기동력과 비행 거리를 자랑하는 전투기가 잽싸게 날아가 적의 함대를 가격하고, 거포(巨砲)를 가진 군함이 적의 사정 거리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가격해 적을 섬멸하는 아주 기초적인 방식이지요. 일본은 이 방식을 태평양전쟁 마지막까지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1941년 태어난 것이 사상 최대, 세계 최대의 전함(길이 314미터, 폭 45미터) 야마토였습니다.

-당시 히로시마현 구레시는 일본 최고 기술력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국가 총력전 시대였으니 당연했겠지요. 예를 들어 일본에 ‘디스코’란 회사가 있습니다. 현재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웨이퍼 절단 장비업체입니다. 야마토 건조 직전인 1937년 구레시에서 숫돌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바로 군함의 거포를 연마하는 거대 숫돌을 겨냥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구레시는 워낙 쟁쟁한 숫돌 회사가 진을 치고 있어 그만 도태되고 맙니다. 부득불 사업 방향을 바꾸지요. 거함 연마에 사용되는 대형 숫돌에서 만년필 펜촉을 둘로 가르는 소형 숫돌로. 바로 이 소형 숫돌 제작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세계 최고의 웨이퍼 절단 장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기술의 총력전을 통해 만들어진 야마토가 최후를 맞은 것은 1945년 4월 7일. 요즘 알카에다나, 하마스도 하기 힘든 자살특공작전인 기쿠스이(菊水)작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격전지 오키나와 해상으로 이동하다 미군 전투기 300여대의 집중 폭격을 받고 가고시마 보노미사키 앞바다에서 처참하게 침몰합니다. 야마토 역시 자살이었지요. 전투기가 기쿠스이작전 초기에 자살 공격으로 소진되자 당시 일본군 수뇌부는 전투기의 호위도 없이 야마토를 오키나와로 보냅니다.

당시 일본 군부는 전투기에 의한 해상 작전이 대함거포주의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투기의 호위가 없는 야마토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적 전투기의 공격을 절대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보냈지요. 오키나와가 무너지면 다음은 본토 격전이기 때문에, 사실 오키나와가 무너진 전함 야마토는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판사판. 사실상 자살이었지요.

-2005년 12월 태평양전쟁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남자들의 야마토’란 영화가 개봉됐습니다. 전함 야마토의 최후를 어린 승조원들의 마지막 전투를 통해 그린 영화였지요. 너무 감상적이라 오히려 감동을 반감시켰지만 나가부치 쓰요시의 주제곡 ‘Close your eyes’는 지금도 입에서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종전 60주년 기념일 당일에 나가부치가 일본의 대표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 스테이션’에 출연해 거대한 전함 야마토의 세트 위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사회자가 노래가 끝난 뒤 ‘야마토야말로 이제 편히 눈을 감을 때’라는 취지의 코멘트를 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흘리자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영화를 통해 야마토는 일본인 마음 속에서 부활했고, 이제는 실물까지 해저에서 부활하려 하네요. 영화는 400만명 정도 관객이 들었습니다. 일본 영화가 맥을 못추는 상황에서 선전이었지요.

-구레시의 경제인들은 전국적인 모금 활동을 통해 수십억 엔을 모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해저에 있는 야마토 전체를 인양하려면 수백억 엔이 들지만, 일단 현실적인 금액을 모아 ‘대함거포’ 시대의 거포의 상징인 2780톤짜리 야마토의 주포와 선체의 앞 부분을 인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답니다.

-지역 경제인들의 발상이 늘 그렇듯, 야마토를 관광 자원으로 하자는 것이 인양 추진의 이유입니다. 실제로 야마토가 인양돼 옛 구레해군공창에 전시된다면 일본 내부에서 상당한 집객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도쿄 인근 요코스카엔 러일전쟁 당시 도고 헤이하치로가 탄 전함 미카사(三笠)이 전시돼 있는데, 꽤 손님을 모으고 있습니다. 야마토는 일본인에게 미카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요.

미카사는 승리와 영광의 역사를 상징하지만 야마토는 반대입니다. 패배와 굴욕?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배를 가르는 사무라이의 비장미랄까?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가 그린 것처럼 국민 모두가 동정하고 추모하는 장렬함이 있습니다.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신사에 수십만명이 모이는 것도 그렇지요. 군국주의나 침략의 향수 탓이라기보다는 나라를 위해 비장하게 죽은 영혼을 추모하는 것입니다.

전함 야마토 역시 충분히 야스쿠니와 같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지요. 만화 영화 ‘우주 전함 야마토’(내용은 전혀 다르지만)를 통해 전함 야마토에 무언가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한국인들도 일부러 찾아가 구레시 경제에 기여해 주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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