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용산 참사 선(先) 인책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입력 2009.01.21 23:01

용산 재개발 농성 참사를 놓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선(先) 진상 조사, 후(後) 인책'을, 민주당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인책과 대통령 사과, 국회 국정조사를 주장하며 맞서 있다. 상식적으론 현장의 무슨 문제점이 이번 불상사로 이어졌는지 경위를 밝히고 누가 어떤 잘못을 범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먼저다. 사고가 났다면 다짜고짜 최고 지휘책임자부터 물러나게 만들어선 다음에 또 불법·폭력 점거농성이 벌어질 경우 어떤 경찰 지휘관이 능동적인 법 집행에 나서려 하겠는가. 그러나 김석기 내정자 거취를 그런 상식적 순서로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농성자 40여명이 건물을 점거한 것은 19일 새벽 5시였다. 현장에 있던 용산경찰서장이 조기 진압을 건의한 것은 19일 정오쯤, 김석기 내정자가 이를 승인한 것은 오후 7시였다. 진압 작전은 20일 동트기 전인 6시45분쯤이었다. 경찰과 농성자 간 협상 같은 것은 없었고 경찰은 해산 종용 방송만 했다고 한다. 과연 이런 경찰의 조기 진압 방식이 최선이었을까. 2005년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민 농성 때는 경찰이 농성 54일 뒤에야 특공대를 투입했었다.

경찰은 농성자들이 화염병에 쓰려고 시너를 70통, 1400L나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특공대 투입 전 시너로 인한 화재에도 대비했어야 했다. 진압 과정에서 농성자가 투신하거나 떨어질 경우를 생각해 건물 주변에 매트리스를 까는 것도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지만 경찰은 그러지 않았다. 한 농성자는 불길에 휩싸인 건물 4층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 바닥으로 떨어져 팔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김석기 내정자가 구체적 진압방식까지 승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이번 조기 강경진압 시도는 김 내정자가 경찰 총수로 발탁된 배경과도 관련을 맺고 있다. 김 내정자는 작년 촛불시위 때 최루액과 색소분사기를 동원한 검거 위주 방식으로 법과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것이 경찰청장 발탁의 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경찰의 현장 진압책임자들이 그런 전후 사정을 의식했을 것이다. 더구나 진압에 동원된 것은 서울경찰청장 직속의 경찰특공대였다.

김 내정자는 조기 진압을 승인한 결정권자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취임도 하기 전의 경찰 총수가 검찰에 불려 다녀서는 경찰의 사기(士氣)도 영향을 받게 된다. 김 내정자는 앞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지금으로 봐선 그 인사청문회가 어떤 모습일지조차 예상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철거민과 경찰 6명이 희생된 이번 참사는 어느 방향, 어떤 속도로 번져갈지 모른다. 벌써 이 비극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거리 일각을 점령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론 힘든 일이지만 김 내정자는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의 뇌관(雷管)을 터뜨려 혼란을 증폭시키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의연한 자세를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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