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철거민 진압작전의 가슴 아픈 결말

조선일보
입력 2009.01.20 22:11 | 수정 2009.01.20 23:51

20일 경찰이 서울 용산4재개발구역에서 충분한 보상금을 지급하라며 건물 점거농성을 벌이던 철거민들을 강제 해산시키다가 불이 나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했다. 경찰 18명, 농성자 6명은 크게 다쳤다. 철거민들은 4층 건물 옥상에 쇠파이프로 엮어서 함석으로 둘러친 3층 구조의 망루를 만들어놓고 농성 중이었다. 경찰은 기중기로 경찰특공대원들을 태운 컨테이너 박스 2개를 옥상까지 끌어올려 진압에 나섰다. 옥상까지 진출한 경찰과 망루 안 농성자들이 대치를 벌이던 중 망루 안에서 치솟은 불길이 번지면서 망루가 무너져 내렸다.

옥상과 망루 곳곳엔 시너 수십 통이 있었다고 한다. 시너는 작은 불티만으로도 불길이 솟아오르는 강력한 인화(引火) 물질이다. 농성자들은 화염병과 새총을 쏘고 경찰은 물대포로 맞서면서 양쪽 모두 극도로 흥분돼 있었다. 농성자 40여명과 경찰 수백 명이 한데 엉겨 붙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판이었다.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거한 것은 전날인 19일 오전 5시30분쯤이었다. 농성 25시간밖에 안 지난 시점인데 경찰특공대원까지 투입해야 할 정도로 급박했나 하는 의문이 든다. 경찰이 진입에 앞서 인화물질 시너가 곳곳에 널려 있는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경찰은 그간 이런 사태를 맞으면 농성자들을 설득하고 사업 주체와의 협상도 중재하는 노력을 보여왔다. 2003년 서울 상도동 농성은 철거민들이 이번처럼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지어놓고 사제(私製) 총까지 쏘아대면서 무려 1년 반을 버티던 것을 결국 대화로 해결했다. 2005년 경기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민 농성 때는 경찰이 점거농성 54일째에 강제진압을 했다. 진압을 하더라도 농성자들이 육체적, 심리적으로 지쳐 저항하기 힘들 때까지 기다려야 무리 없는 상황 정리가 가능하다.

재개발과 재건축 구역 철거민 시위는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권리금을 주고 영업해온 상가 세입자들은 보상금이 충분하다고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용산4재개발 구역은 전체 세입자 890명 가운데 14%인 127명이 보상이 충분치 않다고 반발해왔다. 서울에선 앞으로 26개 지구 219개 구역의 뉴타운 대상지에서 재개발과 재건축이 계획돼 있다. 재개발·재건축은 철거 대상 세입자들이 일방적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진행돼야 한다.

차기 경찰청장 내정자인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이번 진압 작전을 승인했다고 한다. 경찰특공대는 서울경찰청 직할 부대다. 경찰은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법 질서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위기가 급박한 상황이다. 국민 사정도 절박하다. 올 한 해 내내 노사 갈등, 이익집단 갈등, 계층 갈등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경찰의 강경 대응과 진압 대상과의 충돌이 불꽃을 튀기면 그 불길은 사회 바닥에 깔린 불만과 불안의 인화물질로 옮아 붙어 사회 전체를 태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의 범(汎)정부적 사회안정 대책과 더불어 경찰의 신중하고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중국어로 이 기사 읽기   ://image.chosun.com/cs/200808/images/japan.gif" align=absMiddle> 일본어로 이 기사 읽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