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결국 생활이다. 우리 생활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미처 '디자인'으로 인식되지 못한 '생활 속 디자인'을 연재한다. 디자인 선정은 한국디자인문화재단과 함께 했다.
얼마 전 호주 시드니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햇빛에 반사돼 반짝거리는 은빛 물체를 실은 오토바이에 행인들 시선이 집중됐다. 신기한 듯 쳐다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들이 "어!"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물건은 다름아닌 중국집 배달통 '철가방'. 현지 한국 음식점에서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중국집 철가방은 한국 화교의 독창적인 창작물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전 세계에 화교가 포진해 있지만 철가방을 쓰는 곳은 없다고 한다.
디자인평론가 최경원씨는 "철가방은 빼어난 독창성과 기능미를 지닌 디자인 제품"이라고 평가한다. 최씨가 말하는 철가방 디자인의 우수함은 이렇다. 밝은 금속판으로 돼 있어 청결한 인상을 준다. 안쪽을 낮은 책꽂이처럼 나눠 음식이 쏟아지는 것을 방지한 구조도 실용적이다. 아래위로 여닫는 '슬라이딩식 뚜껑'은 그릇을 쉽게 빼낼 수 있게 한다. 함석판이 약해 쉽게 휘어질 수 있다는 단점은 '원상 복구가 쉽다'는 장점으로 치환된다.
철가방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화교들의 기억을 종합해보면 대략 1960년대 후반. 서울 대학로 중국음식점 '진아춘' 주인 형원호(54)씨는 "1968년쯤 왕십리 철물점에서 양은 철가방을 만들다 70년대 중반 알루미늄으로 바꿨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시작은 '나무가방'이었다. 50여 년 전 화교들은 한국식당과 경쟁을 위해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 보온 효과가 좋은 나무통에 배달했지만 무거운 게 흠이었다. 음식 얼룩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이 단점을 극복한 것이 양철 배달통이다.
45년 전통의 북창동 '신승관' 장경문(55) 전 대표는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는 철가방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 시절 '티허(提盒·화교들이 철가방을 부르던 말)'는 정말 보물단지였다"고 말한다.
이젠 플라스틱 배달통, 컬러 배달통까지 나왔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원조 철가방'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멜라민 파동 덕에 알루미늄 배달통으로 회귀하는 집들이 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