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조선을 뒤흔든 지성의 대립

조선일보
  • 이한우 기자
    입력 2009.01.17 03:12 | 수정 2009.01.29 10:35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
    이경구 지음|푸른역사|279쪽|1만6000원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에서 딛고 일어서려는 재건(再建)의 운동이 한창이었다. 조선 건국이 무략(武略)과 성리학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재건 운동은 온전히 사상적 재정립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왕조의 지속'이라는 제한적 조건에서나마 당대의 지식인들은 조선이 가야 할 길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미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때의 인물들을 떠올리는 것조차 꺼린다. 망국(亡國)의 주역쯤으로 그들을 매도해온 지적 풍토의 결과일 것이다.

    저자는 일단 이런 선입견을 잠시 유보하고 우리를 그 시대의 상황 속으로 인도한 다음 다양한 유형의 지식인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한다. 평가라는 이름으로 편가르기를 하지 않고 한 명 한 명 각자의 역할을 인정하며 그들의 고민과 삶의 역정을 보여준다.

    김장생과 김집 부자(父子), 김육, 장유, 송시열, 윤휴, 유형원, 이현일, 남구만, 김창협 김창흡 형제. 여기에는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이 다 포함돼 있다. 다만 당대의 현실 때문에 서인·노론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왼쪽부터 송시열, 김장생, 장유. 김장생은 송시열과 장유의 스승이었다. /푸른역사 제공
    사실 이들을 오늘날의 개념으로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부분 현실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했고 목숨을 건 정쟁을 벌였던 인물들도 여럿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대적 고민'이라는 차원에서 이들을 느슨하게 지식인으로 부를 수는 있겠다.

    이 책의 특징은 일단 어느 한 당파를 잣대로 하지 않고 서로 대립했던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통합의 사고' '통섭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理)·기(氣) 같은 딱딱한 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앞에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면서 도전을 극복해가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7세기 조선 식자(識者)들의 사상이 드러난다. 주자학 이 외의 길을 모색함으로써 주자학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려 했던 주체성 강한 장유, 실학자라는 범주만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유형원의 거대한 국가 재건 프로젝트, 피말리는 정쟁의 한가운데서 공존의 묘리(妙理)를 추구했던 명재상 남구만 등은 그동안 이 분야 개론서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아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던져줄 것이다.

    김장생 부자나 송시열에 대해서도 맹목적 찬양과 비난에서 벗어나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또 노론의 핵심 중 핵심인 김창협 김창흡 형제의 문학과 철학을 오가는 고민과 모색을 통해 18세기 조선의 독자적 문화를 위한 발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새롭게 제시한다.

    그간의 통설은 노론의 세계관을 실학적 세계관이 깨트리면서 '18세기 조선'이 탄생했다는 식의 교과서 같은 도식이 지배해왔다. 아마도 맨 마지막에 김창협 형제를 배치한 것도 그런 도식에 대한 은근한 도전으로 읽힌다. 하긴 요즘 학계에서는 실학도 성리학에 포함된다는 설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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