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누비는 슈바이처들

입력 2009.01.16 15:00 | 수정 2009.01.16 18:30

‘충남501호’ 24시 동행취재

경운기 한 대가 털털거리며 느릿느릿 좁은 길을 따라 부두로 달려온다. 부두 위에 멈춰 선 경운기에서 내린 이들이 바다를 향해 손을 흔든다.

바다에 떠 있던 충남501호 아래로 작은 보트가 내려지더니 부두로 가 사람들을 태우고 온다. 길이 40m, 폭 8m, 약 160t의 충남501호는 서해 낙도 24곳을 찾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선.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 8명의 의료진과 9명의 승무원이 환자들을 맞는다. 충청남도에서 운영하는 병원선 ‘충남501호’를 동행 취재하기 위해 2008년 말 새벽 충남 대천항을 찾았다.

녹색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단 배. 이선영 항해사의 안내로 승선한 후 좁은 통로 양쪽으로 내과, 치과, 한방과 등 진료과와 검사실, 약국 등이 늘어선 병원선을 둘러보았다. 현미경이며, 컴퓨터 같은 의료기기는 물론 가스레인지와 국통 등 모든 용품이 거친 파도에 대비해 못이 박혀 바닥에 단단히 고정돼 있다. 오전 9시, 충남501호가 뱃고동을 울리며 오늘의 목적지인 효자도를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조타실에서 만난 백윤기 선장은 이 병원선과 21년을 함께했다며 이곳을 ‘집’이라고 불렀다. 

“뭍에 있는 집보다 여기(충남501호)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 여기가 집이지.”

처음에는 공무원 생활이 좋아 보여서 지원했는데, 이제 그에게 병원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너무 좋아. 배 모는 재주 하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니 ‘이게 아니면 언제 내가 베풀면서 살겠나?’ 싶어. 병원도 약국도 없는 24군데 섬을 돌아가며 찾는데, 그곳에선 한 달 내내 우리를 기다리는 거지. 그걸 생각하면 아무리 비바람이 불고 파도가 세도 가야만 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만 봐도 참 좋지 뭐.”

백 선장은 인터뷰 내내 “허허” 하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출항 40여 분 후, 배가 멈추더니 효자도 앞 바다에 닻을 내렸다. 2층 선실 끝에 있는 한방진료실에서 만난 안찬근 씨. 2008년 4월부터 공중보건의로 이 배를 탔다는 그는 “걱정으로 시작했던 병원선 생활이 이제 재미있는 일상으로 변했다”고 했다.

“이곳에 배치된 후 처음에는 앞이 깜깜했죠. ‘귀하게 키운 자식을 어떻게 배에 태우냐’며 걱정하는 가족들 때문에 저는 내색도 못했어요. 처음에는 ‘흔들리는 배에서 어떻게 침을 놓을까’ ‘멀미 때문에 내가 더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침놓는 요령도 생기고, 멀미로 부스스한 얼굴을 보고 환자들이 먼저 농담을 건네기도 하죠.”

이제는 하루하루 이 생활을 즐기게 됐다고 한다.
“꼭 저만 찾는 환자도 생겼는데, 그 분들 얘기 듣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뭍의 다른 병원에서라면 의사와 환자가 이렇게 인간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죠. 가끔 섬에 올라 진료를 하는데, 제 인생에서 오래 기억될 경험인 것 같습니다.”

내과 진료소. 내과의 이동훈 씨가 할머니를 진료하고 있다.

“할머니! 어디가 젤 아파요?”
“감기, 여기저기 다 아파. 감기가 젤 힘들어. 근데 다른 덴 원래 아프니까 그런가 보다 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너무 아파서 요즘은 굴도 못 까.”

문진과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이씨는 순천향대학병원 의료진과 화상으로 20여 분간 협동진료를 시작했다. 역시 2008년 4월부터 공중보건의로 병원선에 합류한 그는 병원선에서 가장 바쁜 의사. 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가 따로 없어 모든 환자를 한꺼번에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방금 화상진료를 한 환자도 감기 때문에 병원선을 찾았지만,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 순천향대학병원 외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고집이 세신데, 젊은 저보다 대학병원 의사들의 말을 잘 들으시지요. 그냥 약만 달라고 우기시던 분도 ‘대학교수님이 큰 병원으로 꼭 오셔야 된대요’ 하면 병원으로 가세요. 대학병원과의 화상진료 협진은 우리 배의 의료영역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는 섬 주민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의사다. 그래선지 이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섬 주민들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요. 겨울이면 굴을 따느라 뻘에 들어가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일하죠. 그렇게 수십 년을 사셨으니 손가락이며 허리, 무릎이 성한 곳이 없어요. 돈 걱정 때문에 뭍에 있는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내고요. 이분들이 병원선을 찾는 것은 반나절 벌이를 포기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어렵게 오신 분들을 어떻게 쉽게 대할 수 있겠어요? 다 치료해 드리고 싶은데, 병원선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제한돼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오후 2시를 넘기자 오전 작업을 끝내고 병원선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김영월(68)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한 달에 한번 병원선을 빼놓지 않고 찾는다.
“여기 선생님이 주신 약을 먹으면 몸이 훨씬 좋아져. 약값도 안 받고. 더 자주 왔으면 하지만 우리 섬만 올 수 없잖아.”

다른 할아버지는 “오늘 침 맞은 곳”이라며 바지를 걷어 올리곤 “이렇게 침 한 번 맞으면 시원해서 내일은 굴을 더 많이 캘 수 있다”며 자랑한다. 오후 4시, 병원선 사람들도 한숨을 돌린다. 내과 진료소를 지키고 있던 정영림 간호사를 발견했다. 병원선을 탄 지 2년째. 보령시 보건소에서 근무하다 병원선을 자원했다고 한다. 보통은 꺼리는 곳이지만, 젊을 때 할 만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용기를 못 낼 것 같았어요. 보령시 보건소에서 일할 때도 주말부부였는데, 이제 더 만나기 어려워져 남편이 난리가 났죠. 그래도 저를 이해해 준 남편이 정말 고맙습니다. 아홉 살, 일곱 살인 아이들에게는 늘 미안해요. 큰아이가 ‘엄마는 낙도 사람들을 돌봐야 하니까 내가 동생을 돌볼게요’ 하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병원선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배멀미”라고 답한다.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고통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파도가 심해지면 모두 1층 선실에 기절한 듯 누워 있죠. 가장 험한 곳이 2박3일을 항해하는 태안•당진 지역인데, 이곳에 갈 때는 그냥   ‘죽었구나’ 생각해요(하하하).”

이혜숙 간호사도 멀미 이야기에 고개를 젓는다.
“말도 마세요. 멀미는 배를 2년 이상 타야 없어진다고 해요. 출항할 때마다 ‘제발 파도 좀 없애 주세요’ 하고 기도한다니까요.”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그녀는 2007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첫 발령지로 병원선을 탔다. “공무원 생활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해 도전했고, 합격했을 땐  ‘이젠 편하게 살 수 있겠다’고 믿었는데, 병원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그런데 2박3일 항해로 태안 당진 지역에서 첫 진료를 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멀미 때문에 거의 기절 상태에서 일했어요.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난 직후였는데 기름 찌꺼기 때문에 피부병과 두통 환자들이 많았어요. 뉴스로만 보던 모습을 직접 대하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지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분들을 치료하고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이 저희밖에 없더군요. 그때 ‘하늘이 여기에 내 자리를 마련해 준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녁 6시, 바다가 어두워지자 병원선은 대천항으로 향했다. 외로운 섬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몸과 마음을 다독여 주는 충남501호 사람들. 이들은 내일도 또 다른 낙도를 향해 바다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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