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14]

조선일보
입력 2009.01.16 05:11

제2장 첫 출진(出陣)

"형님, 이번 동학당의 난리는 그간의 여느 민란(民亂)과는 다른 데가 있습니다. 삼남을 휩쓸고도 모자라 해서(海西)까지 몰아치는 기세도 그렇거니와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폐정을 개혁한다는 대의도 홀대받는 서북인(西北人)의 한(恨)에 올라탄 홍경래의 대의에 비할 바 아닙니다. 거기다가 동학을 따르는 무리 또한 한줌의 수괴를 빼면 거의가 피폐한 삶을 견디다 못해 따라나선 가여운 민초들입니다. 혹시 우리가 명분 없는 싸움을 가로맡아 오히려 다독이고 보살피며 오래 함께 가야 할 민초들과 등지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황해감사 정현석의 기의(起義) 요청이 있던 날, 중근도 말석에 끼어 앉은 큰사랑의 논의에서 넷째 숙부 안태현이 그 논의를 이끌고 있는 안태훈에게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안태훈이 결연한 목소리로 받았다.

"우리가 동비를 토벌해야 하는 까닭은 왕토(王土)와 국권을 참절(僭竊)한 역도의 무리를 쓸어 위로 대군주 폐하(大君主陛下:개화파들이 특히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의지를 드러내려고 승격시킨 고종의 호칭)의 상심을 덜고 아래로 벌써 열 달째 그것들의 분탕질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놀란 가슴을 달래주려는 데 있다. 허나 지난 2월 고부 민란 이후 저들의 지난 행적을 유심히 살피고 또 이제까지의 경과로 미루어 보니 더욱 저들을 용서 못할 죄가 셋이나 있었다."
일러스트 김지혁

"그게 무엇인가?"

군사를 일으켜 동학군과 싸운다는 것은 일족 모두의 안위와도 연관된 일이라 진작부터 그 논의에 나와 있던 중근의 맏아버지 안태진이 가만히 물었다. 안태훈이 공손하게 맏형의 말을 받았다.

"첫째로 저들은 국사를 담당할 능력도 없고, 올바른 개혁의 방책도 없이 구국안민(救國安民)의 대의를 농단했습니다. 저들 가여운 민초의 눈물을 닦아준다면서 오히려 그 등에 올라타고 삿된 권세를 탐하는 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군사를 이끌고 입경하여 권귀(權貴)를 모두 죽여 없앤다(1차 봉기 때의 4대 강령 중 하나)는 게 무슨 혁명의 방책이겠습니까? 양반의 씨를 말린다고 그 불알을 까고 부자를 죽여 그 재물을 나누는 것과 다름없는 삿된 앙갚음일 뿐입니다. 6월의 화약(和約:전주 화약) 뒤는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저들은 이른바 집강소라고 하는 집 위에 집을 지어 조정에서 보낸 관리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호남(湖南)을 왕토에서 베어냈습니다. 서리(胥吏)들은 모두 동학에 입적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보전할 수 없고, 어린 아이들까지 남김없이 끌려 나와 동학의 접(接)으로 엮이었습니다. 밀려드는 서양문물에 강물은 넘치고 둑은 터질 지경인데 이 무슨 때늦은 태평천국(太平天國)의 잠꼬대입니까?"

"그 다음의 죄는 무엇인가?"

"보국의 적성(赤誠)도 없이 척왜(斥倭)를 부르짖으며 대군주 폐하와 민초들을 아울러 속이는 짓입니다. 내 알아보니 적도의 수괴 전봉준은 한때 대원군의 사랑방을 기웃거리며 그 기세를 타 볼까 한 적도 있고, 또 일본의 낭인 패거리와도 연결을 꾀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라를 둘러엎고 권귀에 앙갚음할 세력을 모을 수만 있다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는 무리들임을 보여주는 전력입니다. 그런데 이제 경복궁 변란(청일전쟁 도중 일본군이 갑자기 경복궁과 왕실을 힘으로 장악한 사건)으로 일본에게서 돌아선 민심을 부추겨 두 번째 봉기의 구실로 삼고 있습니다. 언제 변절해서 일본의 주구(走狗)로 돌아설지 모르는 것들의 짓이라 더욱 가소롭습니다."

중근은 죽을 때까지도 일진회(一進會)를 동학의 후인으로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조금이라도 근거 있는 것이라면 안태훈은 자못 예리하게 동학의 한 갈래 전락을 뚫어보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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