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본격 수사 나흘 만에 사이버 세상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던 '미네르바' 박대성(31)씨를 구속한 검찰은 11일 "인터넷 검색과 짜깁기의 달인(達人)에게 국민과 국가 경제가 농락당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법원도 10일 영장을 발부하면서 "외환시장 및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사법부 역시 여론 형성구조가 매우 취약한 우리의 사이버 공간에서, 과대 포장된 익명의 우상(偶像)이 국가 경제까지 왜곡시키는 무질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함께한 것이다.

◆베끼기 달인에 국가 전체가 놀아나

검찰은 박씨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베끼기 전문가'라고 했다. 박씨의 글들이 언뜻 보기엔 '이론'으로 무장된 경제 전문가의 글로 보이지만 대부분 다른 곳에 나온 정보를 가져다 재가공하고 짜깁기했다는 것이다.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활동해온 인터넷 논객 박대성(31₩가운데)씨가 1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 치고 나오고 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검찰은 미네르바가 적중시킨 것으로 유명한 지난해 9월의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예측한 글도 이미 한 달 전에 경제 매체인 '연합인포맥스' 등에 나온 글을 인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해당 매체의 대중 인지도가 낮다 보니 이 예측은 미네르바의 '특종'이 됐고, 네티즌들은 더욱 미네르바를 추종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씨가 지난달 29일 올린 '정부 외환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발송'이라는 내용의 게시물도 인터넷의 경제 전문 사이트와 블로그 등에서 나돌던 루머 등에 착안해 작성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검찰도 박씨의 인터넷 검색 능력과 작문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박씨는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부풀린 것에 대해 "글의 신뢰도를 높이고 남의 주목을 받기 위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대통령 칭송에 스스로 도취

하지만 박씨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에 네티즌이 주목하고 비록 익명이기는 하지만 '경제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받는 데 스스로 '도취'된 나머지 '오버'를 하는 바람에 덜미가 잡힌 것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정부가 지난 연말 외환 매수를 중지하라는 공문을 발송하지 않았는데도 박씨는 허위 내용을 담은 글을 작성했고, 이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당일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를 사려는 주문이 일시적으로 폭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법원이 통상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등의 사유가 아닌 외환시장과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중대 사안'이라면서 영장을 발부한 것은 박씨 글의 파급력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인터넷 문화가 건전한 토론의 장(場)의 역할만을 해 왔다면 이번에 법원도 박씨를 구속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법원 관계자는 "박씨의 구속에는 유언비어와 확인되지 않은 익명의 글이 난무하는 우리 특유의 인터넷 문화에 편승해 국민을 속이고 여론을 왜곡시키는 네티즌을 더 방치해선 안 된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그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280여 편의 글을 올렸는데 검찰은 우선 2개의 글만 문제 삼았다. 검찰은 앞으로 박씨를 상대로 공범이나 배후가 있는지, 경제적 목적으로 글을 썼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박씨는 10일 구속 수감되면서 "IMF 위기 때 손해를 입었던 소상공인·서민과 같은, 정부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구속 둘러싸고 논란은 계속

박씨가 구속되자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당연하다" "조금 심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대희 고려대 교수는 "박씨를 구속하는 데 법률상 문제는 전혀 없다. 허위 사실을 유포해서 공익을 해쳤고 그 영향력이 컸다"며 "법원이 영장 발부 사유를 영향력에 초점을 맞춘 것은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하태훈 고려대 교수는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 개인 의견으로 국가 신인도가 좌지우지된다면 그건 이미 국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여당은 "표현의 자유엔 책임과 절제가 수반돼야 한다"며 구속을 당연시하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며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