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10]

      입력 : 2009.01.12 03:51 | 수정 : 2009.01.13 15:20

      제1장 청계동천(淸溪洞天)

      "다녀왔습니다."

      중근이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며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 안태훈 곁에 있던 넷째 숙부 태건(泰建)이 받았다.

      "오늘은 병풍산 쪽으로 갔었다지. 그쪽으로 수상한 움직임은 없더냐?"

      태건은 성격이 호방하고 무골(武骨) 기질이 있어 평소 자주 조카 중근과 함께 사냥을 다녔다. 그날도 함께 가지 못해 포획(捕獲)한 내용을 궁금해하는 줄 알았는데, 중근의 예상을 빗나간 물음이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일러스트 김지혁

      "해주에서 달아난 동비들 중에 도접주(都接主) 원용일과 부접주(副接主) 임종현이 이끄는 수만 명이 북상하고 있다고 한다. 장연으로 가서 그곳의 적도들과 힘을 합친다는 말도 있고, 구월산으로 물러나 그 험한 지세에 의지하려 한다는 말도 있으나, 어쨌든 우리 청계동은 그런 그들의 길목이 된다. 일본군만 보면 달아나는 주제에, 우리를 만만하게 여겨 엉뚱한 분풀이를 하려 들면 실로 큰 낭패가 아니겠느냐?"

      이번에는 작은 아버지 태현이 넷째 숙부 태건을 대신해 받았다. 이상하게 굳은 얼굴로 중근을 바라보고 있던 안태훈이 그제야 짧게 한마디 보탰다.

      "내일부터는 동천 밖으로 나다니지 말거라."

      그리고는 중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좌우를 돌아보며 하던 말을 이어갔다.

      "포군과 장정을 소집하는 통문은 제가 몇 자 적어 돌린 바 있습니다만, 의려(義旅)를 일으키는 데 격문이 없을 수 없지요. 어느 분이 한번 지어보시겠습니까?"

      "후조(後凋:고석로의 호) 선생께서 토(討) 동비의 대의를 밝히시어 천하의 의사(義士)들을 격동시켜 보시지요."

      안태훈이 막빈(幕賓) 대접을 하고 있는 식객 가운데 하나가 고석로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간절하게 빌기보다는 좌장에 대한 예로 한번 권해보는 것 같았다. 고석로가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자질이 노둔하여 젊었을 적에도 남 앞에 내밀 글이 되지 못했소이다. 더구나 이제는 늙어 생각은 막히고 글은 더욱 무디어졌으니 어찌 그와 같이 큰 소임을 감당해 내겠소? 내 생각에는 의려장(義旅長)이요, 황해 삼비(三飛:글 잘 짓는 세 사람)의 으뜸이시기도 한 안 진사께서 한 번 더 붓을 들어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보시는 게 좋을 듯하오."

      그러자 안태훈이 또 사양하여 서로 권하거니 마다거니 시끌벅적해졌다. 그걸 보고 중근이 물러나려는데 갑자기 마당이 수런거리며 누가 달려와 큰소리로 알려왔다.

      "아룁니다. 포대에서 사람을 보냈는데, 밖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고 합니다."

      안태훈이 전갈을 가져온 사람을 방 안에 들이게 하자 중근이 조금 전 포대에서 본 포수 가운데 하나가 달려오느라 가쁜 숨을 고르며 말했다.

      "황주 사포(私砲)의 영수 격인 한재호가 포군 스무 명을 모아 이리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도중 신천 군수가 보낸 화약 3백 근과 연환(鉛丸) 두 말에 전(前) 화포도감의 포장(砲匠)이 만들었다는 조총 열 자루를 여벌로 가져오고 있는데, 이제 신전동(新田洞)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전갈부터 먼저 보내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안태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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