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맥월드를 뒤흔든 환호성

입력 2009.01.11 23:40 | 수정 2009.01.14 08:42

조형래·산업부 차장대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난주 열렸던 애플의 '맥월드(Macworld)' 전시회는 독특했다.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꼽히는 애플은 매년 초 열리는 이 전시회의 개막 연설을 통해 신제품을 공개해 왔다.

6일(미국 현지 시각) 오전 9시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콘센터. 개막 연설을 맡은 애플의 필립 실러 수석부사장이 청바지, 티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나서자 자리를 가득 메운 700~800명의 취재진과 관람객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어 실러 부사장이 '아이라이프(iLife)09'라는 새 컴퓨터 운용 프로그램을 직접 시연해 보이며 기능 하나하나를 소개했는데, 청중은 새로운 기능이 나올 때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기능이 조금이라도 괜찮다 싶으면 여지없이 휘파람까지 불어대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취재하던 기자들까지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열광하는 황당한 경우도 자주 연출됐다. 심지어 '아이라이프09'와 이날 같이 발표한 새 업무용 프로그램 '아이워크(iWork)09'를 하나로 묶어서 할인 판매한다는 대목에서도 환호가 터져 나왔다.

냉정히 따져보면 애플은 이번 행사에서 그렇게 박수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2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아이폰' 같은 신제품도 없었고, 더구나 애플의 '편집광적인 천재' 스티브 잡스 CEO(최고경영자)는 행사를 불과 보름 남짓 앞두고 자신이 11년간 해왔던 개막 연설을 하지 않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4년 전 췌장암 수술을 받았던 잡스는 이로 인해 자신의 와병설이 나돌자 "건강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마케팅전략 수정으로 더 이상 맥월드가 필요없다"며 행사 주최측을 더 곤란케 했다. 효율이 떨어지는 직원을 가차없이 내치는 특유의 냉철함을 또 한 번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의 냉정함을 탓하기보다는 미국이 낳은 스타 CEO가 건강하다는 데 안도하며 갈채를 보냈다.

다음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세계전자전시회) 개막 연설도 그랬다. 세계 최대규모의 CES에서는 관례적으로 미국 최대의 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 개막 연설을 해왔다.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스티브 발머 현 CEO가 처음으로 개막 연설에 나선 것이다. 이곳 청중도 미국 IT의 상징으로 부상한 발머 CEO에게 기꺼이 갈채를 보냈다. 심지어 작년 내내 야후 매각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제리 양 야후 창업자도 "페이스북(미국의 인터넷 친구 찾기 사이트)에서 친구 신청을 했는데 왜 받아주지 않느냐"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청중은 또 발머가 소개하는 새로운 운용 프로그램 '윈도7'에 환호를 했다. 발머 CEO가 2년 전 출시했던 지금의 운용 프로그램 '윈도 비스타'가 유례없는 실패작이었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기업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 같은 반응은 최근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들을 대표하는 기업이 선전해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들은 "경기 침체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기술은 인류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발머 CEO 특유의 낙관론에 큰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서 기업인이 되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업인의 성격적 결함이나 작지 않은 실패도 과감히 묻어두고 기꺼이 환호를 보내주는 미국인을 보면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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