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맛없는 나라' 영국에 '스타 요리사'는 왜 많을까

입력 2009.01.10 03:19 | 수정 2009.01.10 11:26

출판·방송등 미디어가 '요리계의 베컴' 등 키워 비평·글쓰기 좋아하고 외국요리에 거부감 없는 영국 특유 문화도 한몫

영국 음식은 맛이 없기로 유명하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핀란드 다음으로 음식이 맛이 없는 나라가 영국이다. 요리를 제대로 못하는 나라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고 한 일도 있다. "영국 음식은 모든 게 갈색이 될 때까지 끓이고 또 끓인 것에 불과하다"고 비꼬는 음식평론가도 있다. 그런데 요즘엔 세계 최고 요리사 10명에 꼭 영국 요리사가 들어가고 세계 최고 식당 10개 리스트에 영국에 있는 식당이 들어가 있다. "영국 요리를 먹느니 차라리 정크푸드를 먹겠다"든지 "지루하고 밍밍하다"는 평을 듣는 '맛없는 나라'에서 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 요리사가 등장하는 걸까.

영국에선 출판과 방송 등 미디어가 스타 요리사를 꾸준히 키워낸다. 요리사가 영화배우나 축구선수만큼 인기를 끌자 요리사는 물론 음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그러자 다양하고 좋은 식당도 늘어났다. 요즘 런던은 미국 뉴욕과 함께 미식가들이 좋아하는 고급 식당이 많은 도시로 꼽힌다.
델리아 스미스/로이터
델리아 스미스는 영국 스타 요리사의 선구자로 영국에 요리 붐을 일으킨 1세대 요리사다. 1978년 BBC방송에서 요리프로를 진행하며 요리법에 관한 책을 써 베스트셀러가 됐다. 요리로 국위를 선양한 공로로 훈장까지 받은 제이미 올리버는 '요리계의 베컴(축구스타)'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인사다. 역시 TV 요리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고 런던에 '피프틴(Fifteen)'이란 식당을 갖고 있다.

세계 10대 식당에 늘 선정되는 영국 버크셔 브레이에 있는 식당 '팻 덕(The Fat Duck)'을 운영하는 요리사 헤스턴 블루멘털도 스타 중의 스타다. 세계 10대 요리사로 꼽히는 축구선수 출신 고든 램지는 고함을 지르고 욕하면서 진행하는 요리프로의 주인공이다. 미국에서도 요리프로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고 최근엔 뉴욕에도 식당을 열었다.

영국요리의 발전은 비평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영국 특유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요리책인 비튼 부인의 '살림경영(Book of Household Manage ment)'이 1861년에 나온 이후 영국에선 음식과 요리법에 관한 책을 쓰는 전통이 자리잡았다.

그 전통이 TV와 연결되면서 시장은 더 커졌다. 요리사가 진행하는 TV 프로를 보면서 그가 쓴 책을 사는 사람이 늘고 동시에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이다. 그러자 요리 관련 글쓰기의 영역도 더 확장됐다. 식당 소개, 요리 전문 잡지가 줄줄이 등장했다.

영국 요리가 발전할 수 있는 다른 배경은 영국엔 다른 문화권의 풍미나 음식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식민지를 운영했던 경험 때문이다. 가장 맛있는 인도,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도시는 런던이라고 할 정도로, 영국은 외국 요리를 '남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실험이 가능하다. 실제로 영국서 활동하는 많은 요리사들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출신이고 이들이 다양한 요리법을 뒤섞어 새로운 요리를 내놓는다. 영국 스타 요리사들이 만드는 음식도 '영국 요리'가 아니라 이탈리아나 프랑스 요리인 경우가 많다.

물론 영국 요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서 요리 공부를 한 강지영씨는 "영국에도 상당히 공이 많이 들어가는 맛있는 전통 요리가 있다. '비프 웰링턴' 같은 고급 요리는 제대로 만들려면 2박3일은 정성을 들여야 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전통 영국식 요리는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노동시간이 길어지면서 부엌에서 다 사라졌다. 대신 푹푹 끓이고 단시간에 튀기는 단순한 음식만 남아 그게 영국 요리의 대명사처럼 됐다. 요즘엔 영국 요리라고 하면 '피시 앤 칩스(생선과 감자 튀김)'나 '로스트 비프' 등이 꼽힐 뿐이다.
요리사를 배출하는 직업학교가 많은 것도 영국 요리 발전의 저력이다. 제이미 올리버, 고든 램지, 앤슬리 해리엇 등 유명 요리사를 배출한 웨스트민스터 킹스 칼리지 같은 요리학교에만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요리사 과정에 등록하고 있다.

영어권이라는 이점 때문에 해외 유학생들이 많은 것도 영국이 요리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영어는 영국 요리사들의 또 다른 무기다. 영어로 요리프로를 진행하고 책을 쓸 수 있으면 미국 시장 진출이 쉽고 미국에서 주목받으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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