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4]

조선일보
입력 2009.01.05 03:14 | 수정 2009.01.05 09:55

중근이 새삼스런 눈길로 천봉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해주(海州)에서 올라오는 큰길과 이어진 갈림길 곁의 바위 뒤에서 나오며 소리쳤다.

"얼마 전에 포(砲) 소리가 들리더니 서방님이셨구먼요."

중근이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며 그 사람을 보니, 장연 사람으로 구월산에서 산포군(山砲-)을 지냈다는 황(黃) 포수였다. 아버지 안(安) 진사 밑에 든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는데, 젊었을 적에 세 번이나 큰짐승(호랑이)에게 불을 먹였다고 자랑했으나, 그 말을 믿어주는 포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붙임성이 좋고 눈치가 빠른데다 문자를 읽을 줄 알아서인지 안 진사는 진작부터 그를 곁에 두고 청지기나 서사(書士)처럼 부렸다.

"이 며칠 보이시지 않더니 어디 갔다가 오시는 길이시오?"

나이가 배를 넘을 만큼 연장일뿐더러 아버지를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 중근도 공대로 아는 척을 했다.
일러스트=김지혁
"진사 어른의 명을 받잡고 어제 해주 장을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해주 장을? 거기는 무슨 일로 가신 거요?"

그러자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도 황 포수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요사이 양총(洋銃)을 넘기려는 거간이 장마당에 나온다는 소문이라…."

"양총을 팔다니, 양총이 어디 있으며, 그런 걸 사고파는 간 큰 거간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것도 저자바닥에서…."

양총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중근이 그렇게 물었다. 황포수가 중근이 탄 말 쪽으로 바짝 다가와 수군거리듯 말했다.

"지난 9월 평양전투에서 일본군에게 깨강정이 난 청병(淸兵)들이 내동댕이치고 달아난 양총을 몰래 거둬들여 묻어둔 작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동비(東匪=동학도를 낮춰 부르는 말)든 의려(義旅=여기서는 갑오의려. 반(反)동학 의병을 말함)든 값만 맞으면 누구에게라도 내놓겠다는 장사꾼 심보에 못할 짓이 무어 있겠습니까?"

"그래 만나 보았소?"

"웬걸 입쇼. 구석구석 아무리 쑤시고 다녀도 그런 거간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진사 어른께서 헛소문을 들으신 것이나 아닌지…."

"하지만 듣고 보니 생판 엉뚱한 소리는 아닐 듯도 싶소.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황 포수 말마따나 무슨 일인들 없겠소? 더군다나 양총을 구할 수만 있다면 아버님과 우리 의려소(義旅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힘이 될 것이오. 앞으로도 이 장(場) 저 장 더 수소문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구려."

중근이 양총을 얻지 못하게 된 아쉬움을 달래며 그렇게 어른스러운 말로 얘기를 맺었다. 황 포수가 중근의 고삐를 잡으며 말구종 일을 대신하려 했다. 중근이 사양하고 말했다.

"안장에 매달린 것들 때문에 함께 태워드릴 수가 없어 미안하구려. 다행히 여기서 청계동까지는 길이 멀지 않으니 이만 나 먼저 가보겠소. 저녁에 봅시다."

그렇게 말하고 가볍게 박차를 넣어 황 포수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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