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효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이는 경기 침체 동안 소비자들이 고가의 제품 대신 작고 저렴한, 그럼에도 기분을 밝게 바꿔줄 수 있는 제품을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필자 역시 최근 2개의 립스틱을 구입한 상태이고 앞으로 며칠 동안 나에게 도착할 3개의 택배 중 2개가 화장품에 관련된 제품이다.
경기 침체의 시기는 '지름신'을 거부하는 고행을 수행하기에 좋은 기간이긴 하나 동시에 심리적인 침체도 함께 동반된다는 문제가 있다. 고행도 어느 정도의 숨쉴 여지는 만들어주어야 할 터. 여성들에게 있어 쇼핑은 단순히 소비재를 구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울한 여성들의 마음을 밝게 만들어주는 치료제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여성들은 하고 많은 아이템들 중 화장품, 그중에서도 립스틱을 구입하는 것일까?
경기가 나빠지면서 취업이 힘들어져 좀 더 외모를 가꾸려는 노력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자신감이 회복된다는 점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여성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마지막으로 평소엔 절대로 바르지 않았을 진한 립스틱을 바르며 외출하는 것이다.
정말 진부한 장면이긴 하지만 여성에게 있어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때 새로운 컬러의 립스틱은 명상(瞑想)이나 등산의 정상 정복 후 외침 이상의 파워를 가진다. 미국에선 9·11사태 이후 립스틱의 판매고가 급등한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좀 더 실질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립스틱이 쇼핑의 즐거움 대비 가장 저렴한 아이템이기 때문일 것이다. 커피 한 잔만 포기를 한다면 마음에 드는 색상을 찾을 때까지 실컷 립스틱을 발라본 후 그중 하나를 구입할 수 있다.
이는 명품 쇼핑과도 비슷하다. 작년 한창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나들던 시기, 여성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선 루이비통은 더 이상 명품이 아니라 '에브리 데이 백' 의 대명사로 불렸다. 하지만 경기가 불안해지고 언제까지 지갑을 꽁꽁 동여매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구두나 백에 돈을 쓰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남은 몇 달간 라면만 먹고 지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이 지를 수 있는 소위 명품 아이템은 바로 립스틱. 백화점에 있는 모든 브랜드의 립스틱을 하나씩 구입한다 할지라도 백화점의 스커트 가격 하나에도 못 미친다. 비록 샤넬백은 구입하지 못할지라도 샤넬 신색 립스틱을 구입하여 로고가 박힌 예쁜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 안을 걷는 것은 허영심과 현실의 좋은 타협점이 될 수 있다.
비록 가방은 인터넷에서 구입한 인조피혁의 저렴한 제품을 가지고 다닌다 할지라도 그 안에서 더블C 혹은 CD 의 명품 로고가 박힌 립스틱을 꺼내 당당하게 바를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해준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파워이다.
립스틱의 판매고가 늘었다고 립스틱을 구입하는 여성의 인구가 갑자기 증가하였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무한 반복으로 립스틱을 구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립스틱은 아이크림처럼 사용을 완료해야 새로 구입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색상과 질감의 다양성도 한몫을 한다. '집에 똑같은 것이 있는데' 라는 죄책감이 들지도 않는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똑똑한 화장품회사들은 조금씩 다른 립스틱 색상을 만들어낸다. 물론 남성들이라면 핑크가 핑크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모르는 소리! 여성들만은 알고 있다 그 미묘한 차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