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두 심사위원은 각기, 김다연씨의 '얼음왕국'과 민구씨의 '오늘은 달이 다 닳고'를 당선작 범위 안에 든 작품으로 올려놓았다. 우리는 이들의 다른 응모작들을 포함하여 두 차례 더 읽어보았다. 민구씨의 '오늘은 달이 다 닳고'를 당선작으로 꼽는 것으로 합의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민씨의 작품들은 시가 일상언어 사용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서 시 아닌 것들과 스스로를 변별케 하는, 고유한 층위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층위란 산문의 평지에서 좀 떠 있는 부력, 흔히들 말하는 시적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 영역을 지칭하는 것인데, 민씨에게는 그러한 발견이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새들은 (…)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라든가, 그의 다른 시 〈배가 산으로 간다〉에서의 "물속에 매달아 놓은 조등" 같은 대목은 범상치 않은 발견이다. 그것이 있을 때 시가 스스로 뜬다. 이런 좋은 부력이 있음에도 그것을 방해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민씨에게도 있다. 다분히 서술적인 말투라든가, 시라고 하는 대단히 인색한 지면에서 동어반복하면서 낱말들을 낭비하는 것, 시적 상념이 더 깊은 데로 들어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 등등이다. 이런 악습은 대부분의 응모작들에게 더 해당된다 하겠다. 특히 근래 판타지에의 경향성 속에서 스스로도 감당 못할, 실패한 은유들의 범람은 참 견디기 힘들다.

시를 심사 중인 문정희(왼쪽)·황지우 시인.

김다연씨의 '얼음왕국' 외 2편도 고루 시를 스스로 유지시키는 역량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텍스트 안에 반짝 전기가 들어오게 하는 발견의 신선함이 약하다 할까. 상념이 동화적이라고 해야 할지, 유아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심사자들에게 앞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된 시인의 이름을 부여하기에는 아직 실감이 덜 왔다. 양서연씨의 '붉은 귀', 한창의씨의 '어떤 행방'을 최종심에서 우리가 논의했다는 것은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의미한다. 이 땅의 싱싱한 시를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모두의 정진을 바라며, 당선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