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민·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국제중학교 입학전형의 마지막이 '공개 추첨'이었다고 한다. 인간이 직면한 문제를 추첨과 같은 우연적 선택으로 결정하는 행동은 공자님이 살았던 2500년 전 시대에 흔하게 사용했던 점(占)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이 우연적 선택은 아이들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결정이지만, 2500년 전만큼도 진지함이나 고민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돈 놓고 돈 먹기" "이판사판 가리지 않는다" 식의 도박판, 이것들이 현재 교육문제를 푸는 방식이자, 우리 삶의 모습이다.

"말할 수 없이 기쁘죠. 말할 수 없이 기쁘고요. 여태까지 우리 아이가 수고를 많이 한 거 같아요."

추첨을 통해 합격한 아이 부모의 탄성이다. 아이의 운(運)이 실력이라고 믿는 것, 그것도 아이 노력의 결과라고 믿는 것, 모두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부모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아이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운이라는 것을. 운에 살고 운에 죽는 운생운사(運生運死). 운마저도 노력의 결과로 돌릴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골목마다 '바다 이야기'라는 이름의 도박판이 벌어지고, 뇌물과 협잡으로 챙긴 돈도 도박판에 투자하고, 가장 유망한 인터넷 벤처 비즈니스가 '온라인 도박판'인 나라 말이다.

교육을 운에다 맡기는 게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할 여지도 없이, 운으로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제도를 쉽게 만들고, 심지어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불만에 대비해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서약서까지 만드는 상황이라면 우리 사회는 정말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차라리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을 추첨으로 뽑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사회 전체가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혼돈의 상황에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려주는 현상이다.

왜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할까?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에서 혼자 잘살 수 있는 길을 찾게 하기 위해서란다. 국제중 로또 전형이 우리 사회에 알려주는 메시지이다. 정말 부끄러운 우리 교육의 목표이자 종착점이다.

자신의 삶이, 또 자기에게 중요한 사람들의 삶이 운에 따라 정해진다고 느낄 때 인간은 미신적 사고와 행동을 더 하게 된다. 이것의 결과는 '학습된 무력감'이다. 학습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 일상의 삶을 불행하게 받아들인다. 계속되는 우울증과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운으로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노력하였지만 스스로 부족하여 실패했다고 믿을 수 있다면, 좌절감을 느끼더라도 부족함을 채우려 한다. 모든 것을 운으로 돌리는 상황이라면 허탈함만 남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길거리에 운세, 사주 간판이 늘어나고, 젊은이들이 불안한 미래 때문에, 심심풀이로 또는 재미로 자신의 운세를 알려고 할 때, 우리 사회는 벼랑 끝에 있다.

연말연시에는 새해의 운을 알려는 마음도 커진다. 각자의 운은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 자신이 지키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성찰할 때 생겨난다. 운은 추첨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과 행동이 만들어낸다. 가짜 운이 아닌 진짜 운으로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