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참된 마음 있었지만 참된 진실은 없었다

    입력 : 2008.12.23 03:18

    연말 학술지들 분석 논문 실어
    사실과 합리성 없는 대중의 분노에 편승
    시위와 놀이 공존 '재미 정치' 보여줘

    지난 5월부터 석 달 넘게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촛불'의 광풍(狂風)을 분석하는 논문들이 연말 학술지에 게재됐다. 이 학자들은 '촛불'이 창출한 새로운 역동성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이 딛고 있었던 대단히 불안한 토대를 우려하는 글들을 실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진정(眞情)

    "'참된 마음'은 있었지만 '참된 진실'은 없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철학과 현실》(철학문화연구소 刊) 79호에 기고한 〈사실과 합리성의 관점에서 본 '촛불'〉에서 "촛불은 아름다웠지만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2008년 초,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졸속과 무신경, 리더십과 철학의 빈곤은 경악할 만한 것이었고, 여기서 민심은 대폭발했다. 윤 교수는 "촛불의 핵심적 의미는 민주시민의 활달한 자기 표현을 가능케 한 극적 체험이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비장한 절규와 폭력이 아니라, 함께 하는 잔치에서의 집합적 즐거움을 통해 정치적으로 결합하는 현상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촛불의 '숭고미'에는 허점이 존재했다. 윤 교수는 "2008년 촛불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사실과 합리성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촛불의 대대적 확산을 가져온 기본적인 출발점은 '독극물 비슷하게 치명적인 것으로 여겨진 미국산 쇠고기의 인간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분노'였다. 그런데 광우병이 통제되고 있으며 불안에 떨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학문적으로 입증됐고, 광우병 공포를 확산시킨 리처드 로즈와 콤 켈러허의 책들 역시 분명한 오류가 밝혀졌는데도 촛불이 거리를 메웠던 것에 대해 윤 교수는 "사실과 합리성에 근거하지 않은 대중의 공포와 분노에 편승한 사회운동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실천적으로 현명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촛불 앞에 눈물짓고 환호하는 진정성(眞情性)은 고상하지만, 그것이 밝은 대낮이 도래한 뒤 신기루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과 합리성의 잣대를 충족시키는 진정성(眞正性)을 갖춰야만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정보가 곧 지식은 아니다

    《지식의 지평》(아카넷 刊) 5호에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른 정치사회 변동〉을 쓴 김상배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촛불집회가 복합 네트워크의 특징인 ▲아메바와 같은 유연성 ▲레고 블록과 같은 확장성 ▲도마뱀의 꼬리와 같은 생존성 ▲리더가 없는 무중심성의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 시위와 놀이가 공존하는 '재미 정치(fun politics)'와 개인의 행복을 주장하는 '생활 정치'의 담론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촛불'의 문제점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되다 보니 이것을 '지식'으로 착각할 우려를 안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보'가 아무리 양적으로 늘어난다 해도 자동적으로 쓸모 있는 '지식'이 될 수 없으며, 2008년 촛불집회는 '네트워크화된 사적 공간'일 뿐 '공익을 추구하는 공론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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