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기술센터. 연구원들이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며 그래픽으로 재현한 원유시추장비 블록(선박·해양플랜트를 이루는 부분품)을 차곡차곡 맞추고 있었다. 실제로 배를 건조하기 전 컴퓨터로 미리 조립을 해보는 '사이버 탑재 공법'이다. 크레인과 독(dock·배를 만드는 일종의 큰 웅덩이) 같은 장비와 시설은 물론, 바닷물까지 실제 조선소를 3차원 이미지로 옮겨놓은 시스템을 통해 작업이 진행됐다. 크레인이 블록을 들어올리자 하중이 표시되고, 줄이 흔들리지 않는지 측정됐다.
또 블록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안에 들어가는 수만 개의 파이프와 기계 부품이 정해진 위치에 제대로 장착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배재류 기술기획팀장은 "컴퓨터로 미리 맞춰본 후 선박을 건조하면, 길이 50m 이상의 대형 블록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조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블록 가공공장에서는 로봇이 불꽃을 튀기며 후판(선박 제조용 철판)을 용접하고 있었다. 이 로봇은 입력된 정보에 따라 용접할 곳을 스스로 찾아 작업을 했다.
곡면(曲面) 용접 같은 복잡한 작업은 사람이 하고 있지만, 앞으로 로봇의 영역이 커질 것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배 팀장은 "선박은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해 다른 나라에서는 공정 자동화를 잘 구현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자동화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굴뚝산업과 IT가 만났을 때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업체가 IT 기술로 무장하고 있다. 조선업은 흔히 굴뚝산업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국내 조선소들이 인터넷 기반의 3차원 설계시스템과 조립 로봇, 자동운항제어기기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신종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한국 조선업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세계 1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 IT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이제 조선업도 첨단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IT 기술은 선박 건조 공정 곳곳에서 쓰인다.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은 3~5년 전부터 선박 전용 3차원 설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선체와 그 안에 들어가는 전선·파이프·기계장치들을 입체적으로 설계하는 프로그램으로, 일반 설계 시스템보다 정밀도가 좋고 생산성이 10% 이상 좋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컴퓨터로 설계를 마친 이후 후판 절단과 용접 공정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담당한다.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절단 공정의 90% 이상을 로봇이 처리하며, 삼성중공업은 로봇 도입을 통한 전체 공정 자동화율이 65%에 이른다. 또한 선박 블록 운반 차량에는 GPS를 장착해 이동 경로를 관리한다.
◆대형 조선소들 앞다퉈 IT 도입
현대중공업은 IT 기술을 통해 배를 완성하는 '디지털 조선(造船)'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를 위해 선박의 계약·설계·건조·애프터서비스 등 선박 운영에 걸친 정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선박 수명주기관리 시스템' 개발을 지난 7월 시작했다.
삼성중공업은 조선소 전체를 컴퓨터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후판 가공부터 조립 등 전 과정이 컴퓨터로 제어되고 각 공정에는 무선 통신 등 기술이 적용된다.
IT 기술은 생산 공정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선박 자체에도 접목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처음 인도한 드릴십(깊은 수심의 해역이나 파도가 심한 해상에서 원유·가스를 시추하는 설비)에는 GPS·레이저 등을 이용, 높이 16m의 파도와 초속 41m의 강풍에서도 똑같은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최첨단 위치 제어기술이 장착돼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레이더·전자해도·항해정보표시장치를 하나로 통합한 통합제어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인공위성을 통해 파도·바람 등 해역의 특징에 맞게 최적의 항로를 자동으로 찾아준다.
지식경제부가 내놓은 '한국 산업 성장동력' 방안 가운데에는 조선업과 IT가 합쳐진 지능형 선박을 개발한다는 계획이 들어가 있다.
◆"중국,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현대중공업 CIO(IT 총괄)인 황시영 전무는 "최근 중국도 조선에 IT 분야를 접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중국의 선박 IT 수준이 한국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조선공업협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격·인건비·생산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경우 조선업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격차는 5년 정도지만 정보화 수준은 10년 이상 격차가 난다. 한장섭 조선공업협회 부회장은 "중국이 조선업 분야에서 2015년 한국을 추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쫓아오고 있지만, 국내 조선업체들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IT 기술을 활용하면 중국과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