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모멸… 자괴… 자살 盧 정권에서 스러져간 사람들

입력 2008.12.19 16:40 | 수정 2008.12.21 10:51

|포커스|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3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04년 3월 한강에 투신한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유족들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개 사과하지 않을 경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에게 인사청탁 뇌물을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남 전 사장은 노 대통령이 TV 기자회견에서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직후 투신 자살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어떤 연유에선지 수사를 받던 중에 자살하는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자살 사건 후에는 ‘정권의 희생양’이라는 뒷말이 따라다녔다. 권력으로부터 받은 극도의 모멸감이 개인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갔다는 비판이었다. 자살 같은 최악의 선택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권으로부터 받은 모멸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자리를 떠났던 사람도 적잖다.

자살한 사람들
안상영 전 부산시장
“같이 일하자는 노측 제안 수차례 거절하자 수사”
“수모 감내 어렵다” 유서… 안씨 측 “권력에 의한 살인”

2004년 2월 4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돼 수감 중이던 한나라당 소속 안상영 당시 부산시장이 부산구치소에서 목매 자살했다. 안 전 시장은 2003년 10월 진흥기업 박모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부산 동성여객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가 새로 드러나 검찰의 추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자살한 사람들 (왼쪽부터) 안성영·남상국·정몽헌·박태영·이수일

안 전 시장은 유서를 몇 점 남겼지만 직접적인 죽음의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 없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까닭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 진상조사단이 자살 현장에서 발견한 안 전 시장의 메모 형식 문건에는 “미안하오. 희망 없는 하루하루. 고통의 시간, 사회적 수모를 모두 감내하기 어렵소. 오늘의 고통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한 직접적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다시는 나와 같은 공직자가 없었으면 합니다…”라고 기록돼 있었다.

안 전 시장은 수감 초기 옥중일기에 ‘억울함이 벗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자’(2003년 10월 17일), ‘梅一生寒不賣香’(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10월 19일) 같은 구절을 기록하며 의지를 다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지쳐가는 것 같다’(10월 28일) ‘하루하루가 힘겹다’(11월 13일) ‘약 없이는 잘 수 없다. 전부가 망가지고 있다’(12월 15일)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해졌고 육체적 고통도 호소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그의 자살에 대해 40년 공직생활의 결말이 수감생활로 끝나는 데 대한 수치감과 모멸감이 겹친 상태에서 건강 상태마저 악화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친구였던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안 시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번 같이 일하자고 하는 것을 거절했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말을 했다”면서 그의 죽음은 “권력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안 시장이 자살하기 10여일 전 그를 면회했던 최 대표는 “노 대통령이 부산에 올 때마다 ‘도와달라, 같이 손을 잡자’는 말을 했다고 한다”면서 “그때마다 안 시장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 죽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최 전 대표는 “안 시장은 검찰 수사 정도를 못 견뎌서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정권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시장을 무리하게 다루다가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안 시장을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방송에서 공개적 망신 주고 파렴치한 만들어
부인 “노 전 대통령 사과 안 하면 소송하겠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2004년 3월 11일 오후 12시30분쯤 서울 한강대교 남단 400m 지점에서 투신자살 했다. 당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게 사장 연임을 청탁하며 3000만원을 준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는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번 남상국 사장이 청탁했다는 이유로 해서 제가 민정과 인사에 지시해서 직접 청와대의 인사사항은 아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까지 행사해서 연임되지 않도록 하라 지시했고 뒤에 확인까지 했다…. 대우건설의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논현동 집에서 가족과 함께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남 전 사장은 회견이 끝난 뒤 대우건설 법무팀장 신모씨에게 “내가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는 내용의 전화를 했고 차를 타고 나가 한강에 몸을 던졌다. 자신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고 심한 모욕감을 느껴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유서는 없었다.

그가 세상을 뜬 지 4년9개월이 지났다. 남 전 사장의 아내 김선옥씨는 지난 12월 16일 사건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말문을 열었다. “그냥 묻어두려 했지만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입을 연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남편이 노건평씨가 있는 김해에 가서 사장 연임을 부탁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한 적도 없는데, 노 대통령이 ‘좋은 학교 나오고 성공한 분’이란 말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고 파렴치한 사람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상식적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노건평씨)한테 ‘이번에 사장 임기 다 되어가는데 다시 사장 시켜주세요’라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돈을 준 것도 대우건설을 끌어들이려 했던 민경찬(노건평씨 처남)씨와 다른 사람들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의 자살 이후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사과를 바란다”고 했다. “그동안 숨만 쉬고 살아왔다”는 김씨는 “법적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다. 민·형사 소송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하루 12시간씩 돌림빵 추궁하고 머리 내려치고…”
 `자살이냐 타살이냐,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전 회장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정 전 회장은 2003년 8월 4일 자신이 일하던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주차장 화단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정 전 회장은 당시 DJ 정권의 대북 불법 송금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비자금 의혹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었다. 당시 대북 송금 특별수사는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결단’으로 받아들여지며 진보진영 내에서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정 전 회장의 사무실에선 A4 용지 4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부인과 자녀들에게 보내는 2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게 보내는 1장, 현대 임직원에게 보내는 1장 등이었다. 유서 내용은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달라’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 달라’ 등 명확한 자살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때문에 정 전 회장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확산됐다.

먼저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민주당 함승희 의원은 국회 법사위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씩 검사와 수사관들이 번갈아 돌아가며 이른바 ‘돌림빵 추궁’을 하고, 전화번호부 같은 두꺼운 책자로 정 전 회장의 머리를 내려치고,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분식회계나 비자금 수사를 통해 재벌기업 하나쯤 망하게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등의 협박과 모욕을 가한 사실이 정 회장 측근들의 주장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수사에 변호인이 입회했고 식사도 변호인과 했다. 전화번호부 같은 것으로 내려친 일은 듣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타살설도 불거져 나왔다. 정 전 회장이 투신했던 현대사옥 12층의 창문은 가로 95㎝, 세로 54㎝의 크기로 밀어서 여는 방식이다. 반(半) 개폐식이라 성인 남성이 혼자서 빠져 나가기에도 공간이 좁아 결국 누군가 민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경찰은 “현장 감식과 행적 조사 결과 외부 침입의 흔적이 없고 출입문이 안에서 잠겨 있는 데다 부검 및 유서의 친필 감정 결과 등으로 봐 타살 혐의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며 자살로 결론 내렸다.

2006년 1월엔 정 회장을 자살 전날 만났다는 한 검찰 관계자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정 전 회장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자살로 몰려갔거나 타살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의 장녀 정지이(현대유엔아이 전무)씨는 2004년 5월 ‘정몽헌 회장 추모카페’에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시던 분이 가족을 포기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고, 항상 삶의 긍정적인 측면을 찾고자 했던 분이 평소에 자신이 부정적으로 여기던 방식(자살)으로 세상을 버렸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란 글을 올렸다.

박태영 전 전남지사
 `열린우리당 입당 직후 비리 혐의 수사 받다 한강 투신
“무리한 수사… 극심한 자괴감에 극단적 선택” 비난

2004년 4월 29일 낮 12시48분, 박태영 당시 전남지사가 서울 반포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했다. 승용차를 타고 가던 중 “잠시 바람 좀 쐬겠다”며 기사에게 차를 세우게 한 직후였다. 투신한 그는 한강 경비정에 의해 구조된 뒤 곧바로 인근 한남동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생명을 건지기에는 이미 늦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1999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그는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거쳐 2002년 지자체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남지사에 당선됐다.

자살 당시 박 전 지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불거진 인사 및 납품비리 의혹과 관련해 서울남부지검에서 사흘째 조사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투신 배경엔 ‘수사에 대한 심적 압박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은 정몽헌 전 회장과 안상영 전 시장, 남상국 전 사장에 이은 잇단 자살 사태를 지적하며 “검찰이 수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줄줄이 자살하는 사태를 빚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박 전 지사가 자살 직전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배경에 의혹을 제기하며 “소중한 인적 자원을 왜 이렇게 죽음으로 내모는지 통탄스럽다” “분열적·파괴적 리더십이 대한민국을 혼돈 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며 노무현 정권을 공격했다.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
 불법도청 수사 받다 “죽고 싶다” 토로… 5일 뒤 목매
‘상관 임동원·신건 혐의 고백 자책 때문’ 분석도

2005년 11월 20일 이수일 전 호남대 총장이 목을 매 숨졌다. 관사로 쓰던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베란다에서였다. 2001년 11월~2003년 3월까지 국가정보원 2차장으로 재직했던 그는 국정원 불법 도·감청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이씨는 자유롭고 평온한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상관이었던 신건씨와의 대질심문도 받지 않았다”며 “왜 그가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즉각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부터 강압수사 의혹이 제기되자 검찰은 진상조사단을 꾸려 사태 파악에 나섰다.

당시 이 전 차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상당한 심적 압박을 받았다는 추측이 일었다.

자살 직전인 2005년 11월 11일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을 만나 “죽고 싶다”고 심경을 토로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도청 사실을 알고서도 이를 근절하지 못한 데 대해 죄책감도 가졌던 것으로 보도됐다. 그가 3차 조사를 받은 직후인 2005년 11월 15일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이 구속됐다는 점에 비춰 ‘두 상관의 혐의를 털어놓은 데 대한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자리 떠난 사람들 (왼쪽부터) 유진룡·심현섭

자리를 떠난 사람들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
노 정권 거듭된 인사 압력 거부하고 사표 내자
청와대 비서관 “배 째 드리겠다” 폭언 파문

유진룡(52) 전 문화부 차관(을지대 부총장)은 노무현 전 정권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대표적 인물이다. “유능하고 강직하다”는 평을 받았던 그는 노무현 정권의 인사 압력을 거부, 취임 6개월 만인 2006년 8월 전격 경질됐다. 이 과정에서 양정철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유 전 차관에게 “배 째 드리겠다”는 모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일으켰다.

유 전 차관을 둘러싼 사건의 전말이 알려진 것은 지난 10월,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어느 퇴직 관료와의 취중 한담’이란 칼럼을 통해 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전달하면서였다. 발단은 아리랑TV 부사장 임명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코드’가 맞는 권력자의 전직 비서를 그 자리에 앉히려 했다. 하지만 유 전 차관은 △아리랑TV가 적자투성이여서 부사장 자리를 없애기로 했고 △청와대가 추천한 후보의 ‘급’이 낮으며 △따라서 인사 청탁을 수용하면 오히려 청와대에 흠이 될 것이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유 전 차관과 대학(서울대 상대) 동기인 이백만 당시 홍보수석은 유 전 차관을 만나 “인사를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고 충고했고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무슨 오만불손한 태도인가” “왜 반말을 하느냐”는 등의 시비를 걸어왔다. 이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사관이 파견돼 문화부가 단행한 모든 인사 관련 서류 등을 조사하자 유 전 차관은 “더 미련 없으니 조용하게 끝내자”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양정철 비서관은 “배 째 드리지요”라는 답을 했다.

이후 노무현 정권은 유 전 차관을 출국금지까지 시켰다. 당시 파문을 일으킨 ‘바다이야기’ 사건과 관련, 도박용 상품권 유통을 결정한 문화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와중이었다. 이는 결재권 어딘가에 있던 유 전 차관을 엮어 넣으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하지만 검찰은 이후 “의혹이 있었던 인사들과 주변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훑었지만 혐의를 입증할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유 전 차관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유 전 차관은 현재 을지대학교 부총장 겸 보건과학대학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심현섭 개그맨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 공개 지지
“괘씸죄로 5년간 아무 PD도 안 불러줘”

개그맨 심현섭(38)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는 괘씸죄에 걸려 그간 TV 출연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심씨는 KBS 간판 개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사바나의 아침’ 등의 코너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다 2003년 초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로 옮긴 후 1년여 만에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심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웃찾사’ 이적 이유에 대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당시 한나라당)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심씨에 따르면 2002년 12월 17일 대선을 사흘 앞두고 KBS 고위 간부가 그를 불러 “연말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했으나 대선에서 이 후보가 낙선한 후 열린 시상식에서는 그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심씨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단 며칠 사이에 본인한테 통보까지 한 상태에서 수상자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대선 결과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자명한 사실이었다”라고 말했다. 심씨는 “공사라는 KBS의 특성상 이미 ‘괘씸죄’로 찍힌 이상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막상 SBS로 옮겼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옮겨 시청률을 올리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후 5년 동안 어떤 지상파 PD도 심현섭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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