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3시 서울 도곡동 한국IBM 본사 건물 23층 회의실. 예비사원 교육을 받는 53명의 신입사원 가운데 박민정(여·26)씨가 맨 앞줄에 자리잡았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의 가슴에는 '신입사원 박민정'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박씨는 지난 4일 6500여명이 지원한 한국IBM 정규 공채에서 123대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박씨의 귀에는 보청기가 걸려 있었다. 박씨는 회사 선배와 임원들의 입을 보며 교육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2급 청각장애인인 박씨는 보청기를 빼면 바로 앞에 있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도 잘 들을 수 없고, 보청기를 착용해도 사람의 표정과 입술 모양을 보아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박씨가 청각 장애를 갖게 된 것은 4살 무렵이다. 유치원에 다니던 박씨는 갑자기 선생님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고, 노래도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이후 7살 때까지 3년간 박씨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의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 훈련을 했다.
박씨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박씨는 "부모님께서 장애를 두려워하지 말고,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이겨내라는 뜻으로 그랬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반 학교를 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선생님이 칠판만 보고 수업을 하거나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하면 노트는 어김없이 백지(白紙)가 됐다. 입 모양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영어 시험은 다른 과목보다 비중이 컸는데, 듣기시험에서 0점을 맞기도 하고 '찍어도' 3~4문제밖에 맞히지 못해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고 했다.
박씨가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데는 친구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박씨는 친구들이 빌려준 노트를 보고 수업 중 빠뜨린 내용을 파란색 볼펜으로 채워 넣었다. 박씨는 "여러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 정리하다 보니까 거의 완벽한 노트가 됐고, 시험 때가 되면 노트를 빌려줬던 친구들이 거꾸로 내 노트를 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불분명한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매일 헤드폰을 끼고 TV 뉴스를 보면서 아나운서의 발음을 따라 했다. 영어책을 보다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 정확한 발음을 수십 번씩 되풀이했다. 덕분에 지금은 친한 사람이 아니면 그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어 100점'의 꿈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 필기시험에서 대부분 만점(80점)을 받았지만, 영어 듣기시험에서 점수를 까먹었던 까닭에 80~85점에 머물렀다.
중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항상 5 등 안에 들었던 박씨는 국어, 영어 듣기시험이 글로 표시되는 청각장애인용 수능시험을 치르고 2002년 연세대에 입학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왔지만 그 뒤로도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대학 강의실은 좌석과 교단 사이의 거리가 멀어 교수의 입 모양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쪽지 시험을 본다는 공지를 듣지 못한 채 수업에 들어갔다가 시험을 망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2년 2학기부터 학교측에 속기 서비스를 요청했고, 결국 받아들여져 그 이듬해부터는 속기사의 도움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2005년 가을부터 2006년 겨울까지 박씨는 "넓은 세상을 보고 영어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의 명문대학인 UCLA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100명 정도의 미국인 친구들을 만들어 영어를 배웠다. 수업에서 만난 한국인 교포 2세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영어를 배웠다. 그에게 말을 잘 걸지 않던 미국인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영어를 배우려 방 청소를 도맡아 했고, 항상 먼저 말을 걸었다.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 박씨의 전체 평균 평점은 3.77(4.3점 만점). 100점 만점으로 따지면 90점에 육박하는 점수다.
취업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토익시험 가운데 듣기시험 분야에서 점수를 딸 수 없었던 박씨의 성적은 450점을 넘지 못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채용 때 서류 전형에서 800점 이상의 토익 점수를 요구했던 까닭에 박씨는 번번이 좌절했다. 작년부터 최근까지 150번 정도 취업을 위한 이력서를 냈지만, 서류전형을 통과한 것은 10여 곳에 불과했다.
주위에서는 "일반 회사 취업은 포기하고 대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지만, 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한국IBM에서 기회를 잡았다. 올해 7~8월 두 달간 학교의 추천을 받아 인턴을 하는 동안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덕분이었다. 서류 전형을 면제받은 박씨는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과하며 취업의 꿈을 이뤘다.
신태영 한국IBM 인사부 차장은 "박민정씨는 인턴 시절에도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우리 회사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나중에 내 이름으로 된 장학재단을 만들어 장애인 학생을 후원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