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영어와 일본인

조선일보
  • 이준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8.12.12 22:53

    일본 메이지유신 주역으로 초대 문부장관을 지낸 모리 아리노리(森有�)는 외교관으로 영국·미국 등에서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1873년 '일본의 교육'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서문에서 "일본어를 없애고 온 국민이 영어를 배우자"는 파격적 주장을 폈다. 추상어가 부족하고 한문에 너무 의존하는 일본말을 갖고선 서양 문물을 도저히 일본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자유민권사상가 바바 다쓰이(馬場辰猪)가 모리의 '영어 공용론'을 반박하고 나섰다. "영어가 일본인을 두 계급으로 분열시킬 것"이라고 펄쩍 뛰었다. 영어를 쓰는 상류계급과 영어를 못하는 하층계급이 생기고 종국엔 두 계층 사이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모리-바바 논쟁'은 10년을 끌었다. 일본 근대화를 이끈 지식층에서 '영어문제'는 그렇게 큰 쟁점이었다.

    ▶조선 초대 총독과 일본 총리를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다. 22세 때 런던으로 유학을 갔다가 영국 학생들에게 "영어 못하는 동양의 노란 원숭이"라는 놀림을 당했다. 그는 훗날 총리에 오르자마자 근대화 교육의 핵심으로 영어수업학교를 전국 곳곳에 세웠다. 요즘 말로,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는 '영어몰입교육'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토산업대 교수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고 농담할 만큼 영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대학원 시험 때 지도교수가 그의 외국어시험을 면제해줄 정도였고 평생 외국도 못 나가 여권도 없었다. 그가 지난 8일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기념 강연에서 "아이 � 놋토 스피쿠 잉구릿슈(I cannot speak English)"라고 한 후론 일본말로 강연을 했다. 귀국한 그는 "나는 절반짜리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어느 언론인이 일본 명문대 정치학과 대학원생하고 대화하다 영국 '더 타임스' 얘기를 꺼냈더니 전혀 못 알아듣더라고 했다. 종이에 'The Times'라고 썼더니 그제서야 "아~, 자 타이무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일본말로 화장실을 '토이레'라고 하는 것도 'Toilet'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 일본 젊은이들 영어 솜씨는 한국 젊은이들 뺨친다. 예전 일본 사람들 영어실력을 생각해선 안 된다. 일본이 영어 못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다간 큰코다칠 수가 있다.

    ://image.chosun.com/cs/200808/images/japan.gif" align=absMiddle> 일본어로 이 기사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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