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정성진이 만난 '조정의 달인'… 서울가정법원 김영희 조정위원협의회장

조선일보
  • 정성진 기자
    입력 2008.12.13 03:10 | 수정 2008.12.13 13:14

    "젊었을 땐 1년 중 360일 이혼생각"
    지금은 이혼소송 막는 '서초동 솔로몬'
    "불경기에, 위기 겪는 부부들 늘어날까 겁나요"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 조정실에 이혼소송을 벌이는 중년의 남녀가 앉아 있다. 분위기가 차갑다. 이혼은 결정됐고 남자는 재산을 6대4로 여자는 5대5로 나누고 싶어한다. 둘 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로 결혼할 때부터 월급도 비슷했다. 남자는 "살림과 육아는 내 어머니가 했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김영희(金映希·64) 조정위원의 머릿속에 "자존심 싸움"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여자를 나가 있게 한 뒤 김 위원이 말한다.

    "애 엄마에게 선물 하나 안 하시렵니까."(김 위원)

    "네?"(남자)

    "10%를 선물로 주시지요. 두 분의 인연은 안 끊깁니다. 애가 있잖아요. 헤어지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들을 낳아준 사람인데 선물 한번 하시지요."(김 위원)

    "선물이라…."(남자)

    남자가 눈을 감는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을까. 수십 초 동안 말을 않는다.

    "솔로몬이십니다."(남자)

    김영희 조정위원이 서울 가정법원 조정실에 앉아 있다. 조정실 탁자위에는 미용 티슈가 놓여 있었다. 김 위원은“여기 온 사람들, 참 많이 운다”고 말했다. /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남자의 얼굴은 자존심을 찾았다. 방에 다시 들어온 여자는 "선물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잠시 떨군다. 그러고는 남자를 보고 "고마워요"라고 말한다. 소송을 하겠다던 사람들이 40분도 안 돼 합의했다. 이때부터 김 위원의 별명은 '서초동 솔로몬'이 됐다.

    그의 조정 성공률은 놀랍다. 조정위원은 '조정 전치(前置)주의'에 의해 이혼을 하려고 하는데 협의하지 못하고 이혼소송까지 하는 부부를 대상으로 조정을 시도한다. 이혼하더라도 적어도 소송은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라는 뜻이다. 김 위원은 "조정의 성공률이 최근 많이 높아져 평균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나는 1996년부터 조정위원으로 일하면서 1200~1300건은 조정을 했을 텐데 70% 정도는 소송까지 안 가도록 막았다"고 말했다. 법이나 상담을 배운 적도 없고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NGO 활동을 한 경력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주부다.

    가끔 그는 이혼 시도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기도 한다. 합의도 못해 재판까지 하겠다던 부부들이 김 위원의 말 몇 마디에 다시 같이 살고 있다. 2003년에는 대법원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2006년에는 여성 처음으로 100여명이 있는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협의회 회장이 됐고 연임했다. 그는 지방에 특강을 다니고 서울시에서 무료 상담을 한다. 그를 '귀신', '조정의 달인'이라고 부르는 판사도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김영희 부부컨설팅'이라는 상담소를 분당에 열었다.

    "이혼하러 온 사람들을 보니 초기에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절대로 법원에 안 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혼 소송의 조정이 아니라 결혼생활 상담을 하자는 거죠."

    8일 오전에 찾은 분당의 사무실은 크지 않았다. 사무실 분위기도 나지 않았다. 그는 "이 방은 기적의 방"이라고 했다. 두 달 정도 되는 시간에 위기의 부부를 이미 많이 구했다는 것이다.

    ―비결이 있습니까.

    "저도 정확히는 모르죠. 상담, 심리학 이런 걸 배운 적도 없으니까요. 현장에서 순발력은 확실히 필요해요. 앞에 있는 당사자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들의 마음이 변하는 순간이 있어요. 좋은 기억이나 미안한 생각 이런 거요. 이 순간을 축구 선수가 골을 넣으려고 공을 차는 것처럼 빠르게 잡아야 하는 건데…. 소송 내용을 모두 머릿속에 넣고 조정실에 들어갑니다. 당사자들이 거기 있는 내용은 다시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질책을 한다거나 흥분하면 안되고. 그렇다고 서류에만 의존만 해서는 안 되고 당사자들의 대리인인 변호사들이 훼방 놓지 못하도록 설득해야 하고요."

    ―복잡하네요.

    "한 여성학자가 저한테 조정하는 것을 그대로 녹음해서 연구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는 원고나 피고와 마음을 맞추는 재주는 있어요. 인생 경험이 곰삭아서 나오는 게 있지 않을까요. 저도 젊은 시절에는 1년 365일 중에서 360일은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니까요. 전공이 국문학이고 시를 좋아하니까, 그런 게 우려져서 나올 수도 있고. 지금은 현장에서 1200~1300건 정도 봤으니까 경험도 축적돼 있겠죠. 첫 사건은 남편이 아내가 유산하고 온 날 곧바로 부부관계를 요구할 정도로 변태적인 경우였어요. 말하기도 싫어요 정말. 그때는 놀라서 말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보다 더한 경우도 많이 봤으니까요. 이제는 변호사와 기 싸움도 해요."

    김영희 조정위원이 서울가정법원 안에 있는 작은 숲을 걷 고 있다. / 허영한 기자

    ―어떤 기 싸움이요?

    "변호사야 자기 의뢰인이 한 푼이라도 재산을 더 받게 하고 싶죠. 그게 수임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그러나 다 된 조정을 변호사가 방해하면 그건 못 참아요. 그런 경우 저는 그래요.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재판을 해서 제가 얘기했던 것보다 재산을 덜 받게 되면 변호사 님이 상당히 곤란하시겠네요. 반대면 제가 조정위원 관둬야죠'라고 합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는 변호사도 꽤 있죠."

    ―인생 경험이라면 어떤 건가요.

    "남이 보기에 겉모습 보면 공주처럼 살았을 것 같은가 봐요. 친정은 부유했죠. 게다가 외동딸이었어요. 근데 결혼 생활은 안 그랬어요. 남편이 심하면 한 달에 세 번 집에 들어왔어요. 애는 셋이고."

    ―세 번 안 들어온 게 아닙니까?

    "아니에요. 월급 봉투에 지폐가 들은 걸 본 기억도 없어요. 다 술 사먹고 오는 거죠. 회사 직원 1000여명 중에 술로는 1, 2등이래요. 그런 사람이 새벽에 후배들 데리고 들어와서 안주 만들라고 성화도 부려요. 당시에 하도 라면을 많이 먹어 지금 저는 라면을 진짜로 못 먹어요. 그것도 외상으로 사서 먹었어요. 막내딸 줄 젖이 안 나와서, 미음을 먹이면 아기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하면서 토하고."

    ―친정이 부유하셨다면서요?

    "반대한 결혼이었거든요. 숙명여대 입학식하러 광주에서 올라오는 기차에서 남편이 꼬여서 처음 만났고 연애해서 결혼했어요.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죠. 잘 산다고 말하고 나서 한참 지나 친정어머니가 사는 꼴을 보고…."

    김 위원의 눈에 물기가 보였다. 60년대 70년대 김 위원의 남편 같이 살던 사람들은 많다. 남편들은 독립투사도 아닌데 왜 집에 안 들어갔는지. 그래도 많은 주부들은 참고 살았다. 김 위원도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남편이 수년간을 해외에서 근무했는데 심지어는 그때도 사는 방식은 고쳐지지 않았다고 했다.

    1996년 조정위원이 된 뒤 그는 이렇게 산 인생을 승화(昇華)하고 있는 셈이다.

    ―많이 우시는 편인가요.

    "호호. 글쎄요. 제가 살아온 얘기를 가끔 부부들에게 하는데, 그게 통해요. 4년 정도 된 사례인데요. 아내는 못 살겠다고 손목을 칼로 그었고, 서로 흉기 들고 싸워서 고발하고 그런 부부였죠. 이혼은 결정됐는데, 두 아들의 양육권을 놓고 소송을 하면서 조정실에 왔어요. 딱 보는 순간, 느낌이 묘했어요. 사람들이 선해 보여요. 그래서 양육권 얘기는 아무것도 안 하고 제가 산 얘기만 했어요. 이혼을 결심하고 애 셋을 끌어안고 우는데, 제 옷자락 잡고 아이들은 울죠, 그래서 돌아설 수 없었던 이야기 같은 거. 지금은 애들이 잘 커 있다는 얘기도 하고. 3개월만 더 생각해보자고 했어요."

    ―그런 기간을 모두에게 주나요.

    "아니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줘요. 그 부부는 나중에 소송취하를 하고 다시 노력하겠다고 했어요. 그날 담당 판사가 그들에게 박수를 쳐줬죠. 왜 취하했냐고 물으니, 제가 산 얘기 해준 것 때문에 그랬다네요. 장모가 직접 와서 저한테 고맙다고 하셨어요."

    ―처음 조정위원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3년이 흘렀네요.

    "많이 바뀌었어요. 외도가 일반화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이혼 조정에 오는 부부들은 외도만으로 오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술과 폭력도 섞여 있죠. 상담소에 오는 경우 보면 대부분이 외도예요. 또 황혼이혼이 엄청나게 늘었죠. 앞으로 걱정인 것이, 경기 나빠진다고 하니까, 위기를 겪는 부부들이 늘어날까 겁나요."

    ―경제 사정이 나쁘면 이혼하는 부부들이 많아지나요?

    "아무래도 어려운 집에서 싸움이 많죠. 성격 차이라는 거 있잖아요. 이게 경제적으로 괜찮으면 성격 차이도 줄어요. 아주 깊은 곳에 깔려 있는 원인이죠."

    ―황혼이혼은 왜 할까요?

    "여자는 남자와 달라요. 평생을 마음속에 쌓아놓고 있어요. 언제 무슨 말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날짜와 장소까지 기억합니다, 아주 정확히. 남자는 그냥 휙휙 지나쳐버리는 일이지만 다 상처로 남죠. 지금은 여자에게도 상당한 재산의 권리를 인정하니 이혼하려는 거죠. 젊을 때는 남자가 당당하죠? 늙으면 여자가 당당해요. 아버지는 며느리나 딸이 밥을 해줘야 하지만, 어머니는 맞벌이하는 아들이나 딸 집에서 애를 봐줄 수 있어요. 아주 못된 남편들이 있는데 잘해주고 싶은 생각도 없고 반성도 안 하면서 이혼도 못해주겠다고 해요. 밥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런 논리예요. 기가 차죠. 황혼이혼은 대부분 여자가 청구합니다. 그분들은 정말 절박해요."

    ―절박하지 않은 이혼은 없겠죠.

    "답은 없어요. 행복하려고 이혼하는 경우도 있어요. 결혼이 재미 없어서 이혼한다는 30대 여성도 봤어요. 아이도 있는데 별 이유도 없대요. 그냥 행복하지 않대요. 그래서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인 거예요. 애가 그걸 봤고.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남자는 매달리지만 여자는 그러면 간통으로 넣든지 맘대로 하라는 거예요. 참 안 된 일이지요."

    ―조정실에 여러 번 온 사람도 있나요?

    "그 기억은 없는데, 여러 번 이혼한 사람은 많이 봤어요. 4번째인 사람도 봤습니다."

    ―그렇게 이혼하면 행복할까요?

    "이혼, 그거 쉽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물론 정신병적인 폭력, 습관적인 도박 이런게 있는 경우에는 이혼하는 것이 낫습니다. 누가 봐도 심각한 경우는 이혼해야 해요. 그러나 이혼한 사람들 대부분이 후회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재혼 성공하려면 정말 정신 차려야 해요. 재혼하고 나서 싸울 때는 '네가 그러니까 이혼했지' 이러고 싸워요. 이혼은 새로운 출발일 뿐입니다."

    한 이불 덮고 자던 사람에게 이혼하자고 소송까지 걸었던 사람들이 다시 함께 살도록 만들기도 하는 사람이니 분명히 상담도 잘할 것이다.

    그런데 상담소에 간판이 없다. 그냥 호수만 적혀 있다. 남이 알 일 없으니 걱정 말고 들어오라는 뜻이란다. 상담료는 주고 싶은 대로 주면 받는다. 하루에 한두 명 정도만 만나는데 남녀를 따로 만나고 한 번에 3~4시간씩도 얘기한다. 한 번 몰두하면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소장(訴狀) 보느라고 나빠진 눈 수술도 했고 이비인후과도 다닌다.

    한참을 얘기하고 나니 김 위원의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30대 얘기를 할 때는 발랄한 30대로, 황혼 이혼의 케이스를 말할 때는 60대 같았다. 풍부한 감정으로 당사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솔로몬의 비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 위원은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간단합니다. 내 조정 성공률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면 관둬야지요. 아직은 팔팔해요. 어떤 판사님은 '꼭 평생 하시라'고 하는데, 저는 '그만둘 날짜 정해져 있다'고 해요."

    ―상담도 성공적인가요.

    "두 달 동안 40~50건 한 거 같은데 성공 많이 했어요. 외도가 문제가 된 경우가 많은데요. 남자가 외도한 경우는 약간이나마 쉬워요. 한국에서 손 꼽힌다는 증시의 큰 손이 온 적이 있어요. 룸 살롱에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분한테 그랬어요. 당신이 언제까지 성공해서 천장에 붙어있을 것 같겠는가. 날개 있는 것은 언젠가 떨어지는데 그때 둥지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매력, 그거 금방 끝이다. 그 여자가 그 여자다. 잠깐 지나가는 바람 때문에 둥지를 버리겠는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알아듣는 사람 많아요."

    ―그러면 여자의 외도는 되돌리기 힘들어요?

    "황혼 이혼과 비슷해요. 쌓이고 쌓여서 외도를 한 여성이 많은 거죠. 그만큼 잘 안 돌아서요. 요즘에 제가 가정 위기는 암과 같다는 말을 씁니다. 미리 발견해서 얘기가 되면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병이 깊어지면 힘듭니다. 너무 고통스럽죠. 제가 만든 결혼생활 7계명이 있어요."

    7계명은 '혀끝을 조심해라', '상대를 외롭게 하지 마라', '단점을 고치려 하지 마라', '잔소리는 1분만 해라', '허물을 인정하고 사과하라', '좋은 점을 찾아 칭찬하라', '스스로를 잘 대접하라'이다.

    ―말도 아니고 혀끝이에요?

    "강조하려고 만든 표현이죠. 인격에 상처를 주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진짜 가까운 게 부부입니다.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 하지 마세요. 혀끝에는 독화살이 있어서 상대 심장에 꽂힙니다. 그게 이혼이 생기는 90%를 차지합니다. 모멸감을 느끼고, 수치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상대를 외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로운 것은 배가 고픈 것만큼 괴로운 겁니다. 외롭게 하지 마세요. 배 고프면 밥 먹어야지요. 마음이 고프면 마음을 먹어야 돼요."

    ―마음을 먹는다는 게 뭘까요.

    "여성들은요, 상담 와서 전후 사정도 말하지 않고 '저 사랑받고 싶어요, 너무 외로워요' 이러는 사람 많아요. 얼마 전에도 알코올 중독자 남편을 둔 30대가 찾아와서 그러더라고요. 사랑받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정말 아니거든요. 다독이는 거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하는 거고. 제가 왜 남편과 평생을 살았는지 아세요?"

    ―아, 진짜 밥도 굶는데 왜 이혼 안 하셨어요?

    "30년쯤 됐나요. 어느 날 제가 편도선을 앓아서 끙끙거리고 있었어요. 겨우 애들 재우고 누워있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남편이 집에 들어왔어요. 자기도 불쌍했는지 집에 있던 사과를, 그때 우리 집에 어떻게 사과가 있었을까 몰라, 아무튼, 그걸로 삐뚤빼뚤 썰어 화채를 만들어 먹어보래요. 그게 맛이 있었겠나요. 그래도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그거 하나 기억에 담고 살았어요. 그런 게 중요한 거예요."

    ―지금은 어떻게 사시나요?

    "사이 좋죠. 요즘엔 제가 그래요. 젊을 때 고생시켜준 덕분에 내가 조정위원 잘하고 있다고. 그렇다고 제가 지금 남편을 무시하지는 않아요. 저는 평생 김치는 사서 먹어 본 적이 없고, 제가 항상 다 담가 먹어요. 그런 원칙을 지키는 것은 제 자존심을 높이는 길이기도 해요."

    ―남편 분은 정말 결혼 잘하신 거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그거 그 인간 모를걸요. 어제도 자기 지갑이 낡은 거 같아서 잠깐 만졌더니 왜 남의 지갑을 만졌냐고 버럭 소리를 질러요. 그래 봤자 뭐. 호호.""

    서울가정법원 김영희 조정위원협의회장.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