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오래산 죄'를 괴로워하다 외로움에 지치는 곳

조선일보
  • 김수영 시인
    입력 2008.12.06 03:20 | 수정 2008.12.06 19:48

    김수영 시인이 다녀온 가평의 한 요양원

    11월 14일 가평의 한 요양원에 갔다. 남편의 93세 된 외할머니가 거기 있다. 열여덟에 결혼해 자식을 여덟 둔 외할머니는 첩에게 할아버지를 뺏긴 채 광복, 6·25전쟁을 맞았고 세상의 풍파를 견뎌냈다. 외할머니는 2년 전 골반 뼈를 다쳤고 얼마 전부터 요양원에서 머물고 있다.

    문을 열자 개미굴 같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거실을 중심으로 노인들이 머무는 방이 있었다. 노인들은 새싹반, 개나리반 유치원생 같아 보였다. 남자는 연두, 여자는 노란색 티셔츠에 흰색 바지 차림이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욕창 때문에 반듯하게 에어매트에 누워 있든, 베개를 벤 것처럼 목을 든 채 뻣뻣하게 모로 누워 있든, 꼬꾸라질 듯이 앉아 있든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구석에 홑이불을 덮고 웅크리고 있었다. 원장님 무릎을 베고 누운 할머니는 아비에게 응석부리는 아이 같은, 신랑에게 애교를 부리는 새색시 자태였다. 오른쪽 목에는 계란만한 혹이 나 있었고 예전에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게 쪽진 머리는 쑹덩 잘려 있었다.

    할머니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아파, 아파 죽겠어" "추워, 추워 죽겠어"라고 했다. 뼈를 감싸던 살 대신 가죽만 남았으니 더욱 추울 터였다.

    "할머니 외증손녀도 왔어. 둘이나. 할머니 외증손녀 예쁘네."

    아이들의 손을 양손에 하나씩 꼭 잡은 할머니는 이번에는 "밥 좀 먹어, 밥 좀 먹어"라고 읊조렸다. 아이들은 어느 새 소리 없이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표정 없던 할머니의 눈에도 물기가 번졌다.

    그 방에는 8명의 할머니들이 더 있었다. 보라색 털모자를 쓴 채 두 다리를 가슴에 모으고 앉아 있던 할머니는 큰 언니로 97세였다. 그는 자기 이름, 자식·며느리·손자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
    사진작가 박병혁씨 제공
    3년 전에 요양원에 왔다는 정릉 할머니는 미주알고주알 동료들의 상태를 전해줬다. 20년 전 중풍을 맞았다는 그는 그 방의 동생 격이었다. 방을 돌며 누워 있는 할머니들에게 사탕을 꺼내 물려주기도 하고 이불을 덮어주거나 베개를 괴어주기도 했다. 저녁 6시가 되자 소반이 놓여지고 한 상에 세 명씩 앉았다. 반찬은 미역국에 상추겉절이, 검은콩조림, 버섯볶음. 요양원의 하루는 8시 일어나 기저귀를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9시 아침, 오후 1시 점심, 6시가 저녁시간이다. 간혹 귤 같은 간식이 지급되고 도우미가 있는 날은 목욕을 한다고 했다.

    뻣뻣하게 누워 있던 할머니들이 일어나 앉아서 달그락거리며 숟가락질을 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할머니 말아?" "국에 마는 것 싫어?" "싫어? 그럼 바꿔서 맨밥 드릴게!" 산송장처럼 보여도 할머니들의 취향은 까다로웠다.

    "콩이 딱딱해요?" "김치 매워요?" "국이 뜨겁지 않지?" 대답은 못해도 누군가 옆에서 성가시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눈 뜰 기력도 없어 보이던 할머니도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먹었다. 버섯볶음이 입맛에 맞는지 숟가락을 부닥쳐가며 모두들 밥그릇으로 퍼갔다. 숟가락질 못하는 할머니들은 도우미들이 떠먹여주었다. 숟가락이 얼굴 가까이 가면 새 새끼들처럼 한껏 입을 벌렸다. 10분 만에 식사가 끝나자 할머니들은 다시 고꾸라지듯 바닥에 누웠다.

    사흘 뒤 다시 갔을 때 할머니는 목욕을 한 뒤였다. "또 왔어?" "밥은 먹었어?" 이제 제법 대화가 됐다. "누가 가장 보고 싶으세요?" "다 보고 싶지, 뭐." 할머니는 노염을 푼 모양이었다. 첫날 할머니는 아들은 보고 싶지 않지만 손자와 손녀가 보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어법은 독특한 반어법이다. 손자와 손녀는 아들이 데리고 와야 볼 수 있다. 자신을 요양원에 버린 아들도 사실은 사무치게 보고 싶은 것이다. 할머니는 도우미 총각을 볼 때마다 손자 이름을 부르며 고추를 만지려고 했다.

    "처음 오면 내가 왜 이런 데까지 왔나 싶어 괴롭지. 있다 보면 여기가 더 좋아."

    요양원에 오면 누구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왜 이런 데까지 왔나 싶고"라는 말 속에는 일찍 죽지 않은 한탄이 깔려 있었다. 요양원에 가면 누구나 '너무 오래 산 죄'에 대해 괴로워하고 그 다음은 외로움에 지친다.

    세 번째 할머니를 찾아간 날 할머니는 전날부터 곡기를 완전히 끊어 버린 상태였다. 할머니의 입은 끈끈한 침으로 봉합엽서마냥 붙어 있었다. 휴지에 물을 적셔가며 한참을 닦아내자 입술이 열렸다.

    "물 좀 줘."

    아침 점심을 굶은 할머니는 물조차 마시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잔의 물을 벌벌 떨면서 두 모금씩 나눠 마시느라 여섯 번을 누웠다 일어났다. 5시부터 7시 사이 할머니는 물 두 잔, 두유 한 개를 먹었다. 그동안 어떻게 갈증을 참았을까 싶었다.

    곡기를 끊는 건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목에 있던 종양은 젖무덤 중간까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만들어버렸다. 10일 전만 해도 목 주변만 딱딱한 정도였다. 노인들에게 찾아오는 암은 어찌 보면 축복이다. 질긴 목숨을 끊게 해줄 칼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날따라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모두 박수치며 즐거워했지만 할머니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자코 있었다.

    "내일 아침도 식사를 안 하시면 가족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어요."

    원장님은 할머니가 요양원을 떠날 시간이 임박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날 저녁도 완강히 거부해 두유 하나와 과자 한 개를 먹었다. 나는 치매로 온몸이 굳은 할머니 옆에 할머니를 뉘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낮 동안 서로 부딪치기만 하면 꼬집는 두 사람은 밤이 되면 꼭 끌어안고 잤다. 삶의 결승점에 가장 가까이 다다른 사람은 할머니였고 이변이 없는 한 끌어안고 자는 그 할머니가 두 번째일 듯싶었다.

    할머니는 일요일 아침 전문요양원으로, 월요일 오전에는 다시 응급실로 옮겨졌다. 25일 새벽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수선스러운 긴 여정을 마치고 혼자서 종착역에 닿았다. 죽음은 산 사람의 편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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