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인생 마지막 간이역… 노인요양원의 두 얼굴

조선일보
  • 이인묵 기자
    입력 2008.12.06 03:27 | 수정 2008.12.06 19:31

    '동부노인요양센터' 이인묵 기자의 1박2일

    지난 7월부터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노인을 국가가 맡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를 가족이 모시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강한 것이다. 그럼, 요양시설의 삶이 어떨까. 이틀 동안 서울 홍익동의 시립 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를 찾아 시설 속 일상을 들여다봤다.

    요양센터의 하루

    요양센터의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된다. 방에 일제히 불이 켜지며 요양보호사(요양센터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도우미)들이 노인들을 깨운다. 방마다 딸린 화장실에서 노인들을 씻긴다. 입소 노인의 70% 정도가 기저귀를 사용하기에 밤새 흘린 대소변도 처리한다. 오전 6시20분쯤에는 몸을 못 쓰는 이를 빼고 대부분이 중앙 식당으로 모인다. 아침식사가 나오는 7시까지 노인들끼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노인은 식사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건강 상태에 따라 일반식과 유동식이 배급된다. 노인들은 턱받이를 하고 식사를 한다. 분홍색 턱받이를 한 모습이 아이들처럼 보인다. 한미순 간호사는 "겉보기만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실제로 아이 같은 면이 많다"며 "식사 도와드리는 것도 한 분만 해드리면 옆에 분들이 삐치고 샘을 낸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면 각자 일과를 한다. 기계 욕조를 이용해 전신 목욕을 하기도 하고,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물리치료도 받는다. 두뇌 기능을 활발하게 하기 위한 인지작업치료도 있다. 플라스틱 블록이나 나무 조각을 맞추는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두뇌 발달을 위해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광호(74·오른쪽) 할아버지가 서울 홍익동 시립 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 1층 물리치료실에서 고정식 자전거를 타고 있다. /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오후가 되자 남향 창가에 휠체어가 모였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들은 꾸벅꾸벅 졸았다. 건물 사방에 큰 창으로 깊게 들어온 겨울 햇살이 노인들의 얼굴에 떨어졌다. 식당 주변 복도에는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실내를 산책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요양센터의 일과는 일찍 끝난다. 오후 5시에 저녁식사를 하고, 8시가 되면 복도에 불이 꺼진다. 하지만 3분의 1 정도는 취침시간 이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기력이 쇠한 듯 숟가락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요양보호사와 간호사의 일은 8시 이후로도 계속된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2시간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자세를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치매와 중풍

    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에 노인 296명이 살고 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치매를 앓고 있고, 치매에 걸린 이들 중 3분의 1은 중풍도 함께 앓고 있다. 치매에 걸려 실내를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배회 증상을 가진 노인도 50명이 넘는다.

    요양센터 안은 밝고 조용하고 깨끗하다. 요양보호사 124명이 4조 3교대로 24시간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자원봉사자 30여명까지 일을 돕는다. 노인 3명당 1명 이상이 붙어 있는 셈이다.

    노인들은 건물 안을 마음대로 다닌다. 조항건 요양센터 원장은 "인원이 충분하고 건물이 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집에선 안전을 위해 가둬놓을 수밖에 없는 일도 있지만, 센터에는 위험 요소가 없기 때문에 노인들이 마음껏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가족들도 자유롭게 건물 안에 들어온다. 일산에 사는 구경미(48)씨는 2일 정오쯤 어머니를 찾아왔다. 그는 "들어오시기 전에 비해 정신이 더 맑아지신 것 같다"고 했다. 한정수(74) 할머니의 남편인 정용관(74) 할아버지는 아예 자원봉사자로 센터에 다니고 있다.

    노인들의 세계

    노인들끼리 다툼도 있다. 김모(80) 할머니는 기자에게 다가와 "누가 내 물건을 다 훔쳐 갔으니 제발 좀 찾아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물건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의심' 증세를 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증세 탓에 같은 방의 할머니와 종종 다툼을 벌인다고 한다.

    '벽에 똥칠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방에 변을 보고 모른 척하는 노인도 있었고 항문에서 대변을 꺼내서 벽에 바르는 노인도 있었다. 그때마다 요양보호사 2~3명이 달라붙어 기저귀를 갈고 몸을 씻겼다. 대변을 닦아낸 자리에서는 희미한 변 냄새와 강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가족도 아닌 노인의 치매 증상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이곳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백승희 간호사는 "가족이 아닌 것이 되레 낫다"며 "가족은 감정적이 되기 십상이지만, 간호사는 문제 행동을 증상으로 본다. 개인사를 들어도 자신이 개입돼 있지 않으니 행동을 이해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밤에는 백모(88) 할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흘렀다. 할머니는 아들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정신에 이상이 왔다. 한꺼번에 우울증과 치매에 걸렸다. 김문숙 간호사는 "이곳에 온 후로 우울증 증세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가 아들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가 어두운 복도를 울렸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

    2일 오전 입소한 부인을 찾아온 한 할아버지는 "완벽하진 않지만 이게 가장 나은 대안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2006년 요양센터에 들어왔다. 센터에 들어올 때까지 5년 동안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달라붙었지만 할머니의 증세는 나빠지기만 했다. 그는 "그때(집에서 돌봐주던 때)는 차라리 암이 낫단 생각이 들었다"며 "여기 들어오니 나는 내 몸 건사하고 이 사람은 여기서 돌봐주고 해서 50년 같이 산 아내를 버리지 않게 됐다"고 했다.

    김창례(72)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이곳에 자원봉사를 나오고 있다. 처음에는 유급(월 20만원 수준) 자원봉사자였지만 지금은 돈이 나오지 않아도 센터에 나온다. 그는 이곳에 다니면서 치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나도 저런 모습이 될 수 있단 생각에 며칠 잠을 못 잤어요. 무섭기만 했죠. 하지만 계속 보다 보니 익숙해지더라고요. 이젠 할머니들과 이런 저런 대화도 해요. '이것도 피해갈 수 없는 늙는 과정이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무서워할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거구나 하고요."

     
    치매나 중풍 등으로 몸이 불편해 시립동부전문노인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물리치료를 받고있다. /정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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