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19일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을 증권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본지 11월 20일자 보도)
세종증권 매각 사건으로 김형진씨가 뉴스에 등장하면서 증권가에서는 최근 1990년대 '4대 마왕(魔王)'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4대 마왕은 IMF 외환위기 즈음 새 금융 기법을 통해 엄청난 부(富)를 축적한 네 명을 뜻한다. 김형진(金亨珍·50) 회장, 김석기(金石基·51) 전 중앙종금 사장, 박현주(朴炫柱·50) 미래에셋 회장, 권성문(權聲文·46) KTB투자증권 회장이다.
'마귀의 왕'이라는 뜻인 마왕이라는 말 자체가 이들이 받고 있는 엇갈린 평가를 담고 있다. 각자의 소질과 특기를 최대화해 "제조업이 아니라 금융에도 첨단 기법이 있다"는 점을 세상에 알려줬다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지만 준법 정신은 떨어진다는 악평도 있다. 일부에서는 "금융 당국은 이들 뒤를 따라다니며 법 규정을 바꿔야 했다"며 냉소(冷笑)하고 있다. 4명 모두 현재 상황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세종캐피탈 김형진 회장은 '채권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마친 이후 서울로 올라와 법무 사무소 등에서 일하면서 명동에서 채권을 '독학'했다. IMF 외환위기 때 수백 억원대의 수익을 내고 1999년 세종증권(당시 동아증권)을 인수해 제도권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그가 IMF 외환위기 때 금리가 30%까지 오르면서 가격이 폭락한 대기업의 회사채(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돈을 번 이야기는 유명하다. 동아증권 인수도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구설수에 자주 올랐다. 자격 없이 채권 중개를 하다가 사법처리를 받기도 했다.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 이전에는 모 회사의 주가를 띄운 혐의를 받고 수사 당국의 내사를 받기도 했다.
중앙종금 사장을 지냈던 김석기씨는 주식과 국제 금융의 전문가다. 김 전 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와 미국 하버드대 를 나왔다. 그는 1990년대 초 홍콩에서 활동하며 국제적인 금융 감각을 키웠고 이를 한국에 이용했다. 복잡한 내용을 단순화하면, 국내 회사의 채권을 외국에서는 싸게 사고 국내에서는 비싸게 파는 방법을 썼다.
그는 한국에는 거의 처음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한 주식 투자를 해서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외의 조세 회피 지역에 서류만 있는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 이름으로 상장 주식을 사는 것이다. 주식 상황판에는 외국인이 사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은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이로써 주가가 오르면 이득을 챙긴다. 그는 화려한 경력과 성과를 쌓았고 CJ 이미경 부회장과 결혼해 삼성가(家)의 사위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윤석화씨와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외화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고 운영하던 중앙종금은 부실 기관으로 지정됐다. 이후 그는 홍콩에서 살고 있다.
권성문 KTB 회장은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인수 합병(M&A)의 일가(一家)를 이룬 인물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M&A 담당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95년 5억원을 투자해 한국M&A라는 회사를 세운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방법은 매물로 싸게 나온 기업을 사서 경영을 하고 기업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6년 모 회사의 경영권을 주당 5000원에 인수한 뒤 6개월 뒤 1만5000원에 파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KTB를 키웠고 국내 최대의 벤처 대부가 됐다.
그러나 그도 한때는 아슬아슬한 경험이 있다. 1998년 그가 대주주인 '미래와 사람'은 음료수 캔에 작은 냉각장치를 붙여서 2분 만에 아주 차갑게 만든다는 이른바 '냉각 캔'을 발표했다. 이후 회사의 주가가 오르자 유상증자를 해서 돈을 끌어 모았다가 금융감독원의 고발을 받았다. 실제로 상용화는 모르는 상황이었고 허위 공시를 했다는 혐의였다. 이후 권 회장은 미국에서 생활한 적도 있고, 최근 수년 동안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고 은둔해 경영을 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펀드로 신화를 만든 사람으로 통한다. 1990년대에 그는 동원증권 압구정동 지점에서 놀라운 주식 투자 수익률과 투자자금 유치로 이름을 날렸다. 1997년 미래에셋을 설립한 그는 1999년 처음으로 '뮤추얼펀드'를 선보였고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V'자형으로 움직인 주식시장을 잘 읽은 것이다. 현재 미래에셋은 수 조원의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로 커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현재 펀드 자금이 중국에 치우쳤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00년에는 증시가 상황이 좋지 않아질 때 해외로 출국해 수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아 각종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