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200억 파운드(42조원)를 쏟아붓는 '세금 도박'을 감행하기로 했다. 소비자에게 세금을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현금'을 쥐어줘 추락하는 경기를 떠받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이 돈을 '저축'할 경우 영국 정부는 재정적자만 늘린 채 '헛 돈'을 쓰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영국 정부는 다른 유럽 국가들도 감세(減稅) 카드를 선택해 영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출 것을 희망한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등은 '따라가지 않겠다'는 태도다. 저마다 다른 국내 사정 탓에 금융위기 초기 대응과정에서 유럽 주요국들이 엇박자를 냈던 것처럼, 경기부양 대책 모색 과정에서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고 있다.
◆영국의 감세(減稅) 도박
영국 정부가 24일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 포함된 경기부양책의 핵심은 2009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율을 현행 17.5%에서 15%로 2.5%포인트 낮춰 국민들에게 120억 파운드(25조원)의 현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번 부가세 인하로 소비자들은 중형 LCD TV 1대를 사면 14파운드(3만원), 소형 승용차를 살 경우엔 300파운드(63만원)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영국 정부의 의도는 국민들이 덜 내게 된 세금을 다른 소비 활동에 쓰게 해 '소비진작→생산증가→투자확대'로 이어지는 경기순환 사이클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감세정책은 막대한 재정적자를 낳아 중장기적으로 영국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내년 말 영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1180억 파운드(250조원)에 달해 GDP의 8% 수준(EU 국가 중 최고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영국의 야당과 언론들은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미래의) 세금 시한 폭탄', '200억 파운드짜리 도박'이란 표현으로 비판한다. 야당인 보수당의 조지 오스본(Osborne) 예비내각 재무장관은 "국가 경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예산"이라고 비난했다.
◆또 엇박자 내는 유럽
영국이 사상 유례 없는 감세 도박을 단행하던 날,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파리에서 회동해 영국의 감세정책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독일 메르켈(Merkel) 총리는 "영국의 부가세 인하와 같은 정책은 선택하지 않겠다. 이런 정책은 이미 물가가 하락한 국가에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독일·프랑스의 이 같은 행보는 범유럽 차원의 공동 경기 부양대책을 통해 각 회원국에 소비진작을 위해 부가세 1%포인트 인하를 권장하려던 유럽연합(EU)의 행보를 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