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알고 있나,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을"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08.11.25 03:15

    건국 60주년 학술대회 '정부 수립과 그 지도자들'
    이승만은 미국을 흔들었고 김성수는 반공주의자 아니며
    김규식은 매우 현실적 면모…

    이승만, 김구, 김규식, 이시영, 신익희, 김성수, 서재필, 조소앙, 안재홍…. 1945년 광복으로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격동기의 역사에 등장했던 대표적인 지도자들이다. 26일 오후 1시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회장 정윤재) 주최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리는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대회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그 지도자들'은 이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해방정국'의 정치사를 통합의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자리다.(문의 031-665-3365) 건국 전후(前後), 그들은 과연 어떤 역할을 했던가?

    (상단 왼쪽부터) 이승만 김구 김규식 이시영 신익희 김성수 조소앙 안재홍

    '현실'의 이승만, '정신'의 김구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론'은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이 실패하고 소련에 의해 북한의 공산화가 가속화된 냉전구도 상황에서 적어도 남한만이라도 자주 독립과 자유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책이라는 판단 아래 추진됐다. 미국은 결국 이승만의 노선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이승만이 미국을 주도한 격'이었다.(차상철 충남대 교수) 그와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 단독 정부에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던 김구(金九)는 중국을 우선시하며 한국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외치는 등의 비현실성을 드러낸 반면 역사적으로는 완전히 살아났다. '남한 현실의 2인자'가 되지 않고 '남북정신의 지도자'가 됐던 것이다. 개인 김구는 대한민국에 불참했지만 김구의 사상은 약간 온건한 형태를 띠며 신생국가의 건국정신과 헌법으로 수용되는 역설이 일어났다.(박명림 연세대 교수)



    적극적 참여자들―도덕과 포용

    부통령 이시영(李始榮)은 이승만과 달랐다. 임시정부 출신으로 반탁운동을 벌이다 단독 정부 수립을 둘러싸고 김구와 갈라선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우국지사에 가깝게 활동했다. 조직도 계보도 정치적 계산도 없었고, 지극히 도덕적인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세워 나가려 했다.(김희곤 안동대 교수) 역시 임정 요인이었으며 이승만에 이어 국회의장이 된 신익희(申翼熙)는 김구의 자주독립 통일국가 건설노선이 현실 노선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앞장섰다.(김용달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

    2대 부통령 김성수(金性洙)는 일부의 인식과는 달리 반공주의자가 아니라 여운형·조봉암도 포용하려 했던 통합적 지도자였다. 그는 인내력을 갖춘 현실주의자였으며, 참된 민주주의가 독단과 아집이 아닌 타협의 정치임을 보여줬다.(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통일은 최선… 대한민국은 차선

    이상주의적 정치인이라고 알려진 '중도파'의 거두 김규식(金奎植)은 상당히 현실적인 면모를 보였다. 남북 협상에 참여하면서도 북한 정권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했던 것도 그런 모습 중 하나다. 그는 유엔의 승인 이후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했고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이철순 부산대 교수)

    역시 중도파였던 안재홍(安在鴻)은 남북 총선거를 위해 노력했지만 차선(次善)으로서의 5·10 선거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했다.(김인식 중앙대 교수) 남북 협상에 참가했던 조소앙(趙素昻)도 대한민국 정부를 받아들인 뒤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김기승 순천향대 교수) '초당파적 정치가'를 염원하는 중도파에 의해 1년2개월 동안 귀국했던 서재필(徐載弼)은 조국의 통일 민주국가 수립을 위한 최후의 봉사를 한 셈이었다.(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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