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씨티그룹

조선일보
  • 김홍진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8.11.24 22:11 | 수정 2008.11.24 22:59

    1998년 2월 워싱턴 최고경영자회의에 참석한 미국 최대 씨티은행 회장 존 리드에게 뮤추얼펀드와 보험의 강자 트래블러스그룹의 샌디 웨일 회장이 다가가 쪽지를 건넸다. 쪽지엔 웨일의 호텔방 번호가 적혀 있었다. 호텔방에서 웨일은 두 회사의 합병을 제안했고 곧 협상에 들어갔다. 양측은 보안을 위해 서로 '토성'과 '목성'이라는 암호명을 썼다. 5주 뒤 두 사람은 합병을 발표했다.

    ▶세계는 이를 그야말로 '토성과 목성의 결합' 같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총자산 7000억 달러의 세계 최대 금융종합그룹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보험·증권·은행업을 겸업할 수 없게 한 글라스 스티겔법이 막고 있었다. 씨티그룹은 치열한 로비로 1999년 겸업을 허용하는 새 법을 통과시켰다. 리드와 공동회장이 된 웨일의 방엔 클린턴 대통령이 새 법에 사인할 때 쓴 만년필이 전시됐다.

    ▶웨일은 증권사 말단 직원 출신으로 투자자문사를 설립한 뒤 20년 만에 15건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월스트리트에선 그를 '거래의 달인' '인수기계'로 불렀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상식을 뛰어넘는 기업의 배교자(背敎者)'라고 혹평했다. 2000년 리드를 쫓아내고 단독 회장이 됐지만 이사회를 장악하려고 기업평가를 조작한 꼼수가 드러나 3년 만에 물러났다.

    ▶2000년 최고 54달러까지 갔던 씨티그룹 주가가 폭락을 거듭해 24일 3.77달러까지 떨어졌다. 시가총액은 1위에서 5위로 추락했다. 부동산 모기지 투자 부실이 원인이 됐다. 1812년 설립돼 196년 역사를 지닌 씨티은행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250여 개 은행 지점이 있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100여 개국 고객 2억 명이 흔들리는 씨티그룹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어제 씨티그룹에 3060억 달러를 지급보증하는 유례없는 구제금융을 하기로 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보다 클 파장을 우려해서다.

    ▶합병 10년이 된 지난 4월 전 회장 리드는 "합병은 실수였고 슬픈 이야기였다"고 했다. 몸집만 거대했지 효율성이 없었다는 고백이다. 뉴욕타임스도 그제 "관리감독자들이 단기 성과와 고액 보너스에만 집착해 적절한 제어를 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작년 9월부터 위험신호가 있었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방만한 경영을 했다는 것이다. 거대 기업도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거나 경제환경 변화를 외면한 채 안주하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시대다. 미국 경제의 상징 중 하나였던 씨티은행의 위기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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