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있는 사람'으로 살기

    입력 : 2008.11.19 22:09 | 수정 : 2008.11.19 22:57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주변도 돌아보는 마음을

    최보식 사회부장
    자정 무렵 귀가 택시에서 말을 걸었더니, 중년 운전사는 "우리랑 아무 상관없지요. 젠장 그거 한번 내 보는 게 소원입니다"라고 했다.

    종합부동산세의 일부 조항이 위헌 판정이 났을 때, 방송차가 동원돼 생중계를 날리고 신문은 시커멓게 써댔지만, 그날 밤 택시 운전사에겐 관심권 밖이었다. 뉴스의 비중은 자신과의 친소(親疎) 여부에 따라 해석된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과 내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했을 때, 그는 후자에 속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후자였다.

    이날 뉴스에 흥분하고 화색이 돌았던 이들은 전체 납세자의 3% 안쪽이었을 게 틀림없다. 젊은 시절 장만한 집 한 채에서 눌러사는데 어느 날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고, 꼬박꼬박 내온 세금에다 종부세까지 얹는 '세금 폭탄'을 맞았으니 어찌 참을 수 있을까. 호환마마보다 내 주머니에서 생돈 뜯어가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일정한 소득은 없고 은행에서 돈 빌려 종부세를 내야 할 형편" "매달 연금으로 생활하는 우리가 재산세를 포함해 수백만 원 하는 세금을 어떻게 내나"….

    사연은 구구절절 옳고, 꼭 많은 숫자가 억울해야만 억울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종부세를 내서 사회적으로 좀 더 대접을 받았다면 좋았으련만 지난 정권에서는 배척과 따돌림의 대상처럼 됐다.

    정권이 바뀌면 우선 순위로 이것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분개했던 이들이다. 지난 대선에서 종부세를 냈던 이들의 상당수가 현 정권에 투표했을 것이다. 종부세에 담긴 이런 억울한 사연은 진작에 풀어줬어야 했다.

    이제 내 몫도 있겠구나. 그런데 강남의 34평형 아파트에 살기에 종부세를 냈던 아내는 '세대별 합산 과세는 위헌'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아파트 반쪽씩 공동명의로 해둘걸"이라며 땅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하튼 종부세를 냈던 이들은 '언제쯤 얼마나 어떻게' 환급받을 수 있을지 계산하느라 분주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종부세를 내지 못한 사람들의 심정에서도 한번 돌아볼 때가 됐다. 종부세를 내서 억울했던 이들은,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있든 없든, 국세청이 꼽은 상위 48만 명 안에 들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형편이 넉넉한 이들이 얼마나 있으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헤프게 내줄 만한 여유는 없다. 어느 집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저마다 살림 걱정이 쌓여 있다. 더욱이 법(法)의 정의에 어긋나게 '바보처럼'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있는 사람들'의 이러한 '어려움'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다.

    그런데 사회의 눈길은 더 냉정하다. '있는 사람들'은 제 몫을 더 꽁꽁 챙기려고 몇 푼을 더 돌려받기 위해 극성스럽게 설치고, 그 목적을 달성하면 득의만면하고, 주위에 누가 있는지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간혹 비친다. 지난번 쌀 직불금 수령 파동이 났을 때도, 그런 얼굴을 봤는지 모른다. 그 직불금이란 고작 100만~200만원 선이다. 그것 없이도 잘 살아갈 인사들이 농민들의 '절실한' 몫을 가로챈다. 그래서 세간에는 "있는 사람들이 더 심하다"는 말이 떠도는 것이다.

    지구상 어느 나라든 빈부격차와 그 갈등은 있다. 심지어 유럽에서 사회안전망이 가장 잘 작동한다는 독일에서도 '2/3사회(구성원 3분의 2가 중산층 대열에서 탈락)' 논쟁이 있었을 정도다. 이런 문제를 푸는 것은 정부 정책과 제도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있는 사람들'의 의식과 관대함이다. 사회공동체란 제 입만, 저 혼자서만, 제 가족만 배불리 편하게 사는 것을, 잠시는 몰라도, 오랫동안 허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백 배 더 힘든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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