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명사의 집] "음악감상실 카메라타서 '끝없는 취미생활' 해요"

조선일보
  • 김연주 기자
    입력 2008.11.17 04:03

    파주 방송인 황인용씨
    3층 높이 건물을 단층으로 헌 창고처럼 지어
    전문가도 부러워할 스피커에 LP는 1만5000장
    외부 약속 거의 잡지 않고 카메라타서 보내

    카메라타는 콘크리트 벽면과 원목인 천장₩테이블 빛깔이 조 화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다. 김건수 객원기자
    11월의 파주 헤이리는 인물이 조연이 되고 건물이 주인공이 된다. 길가에 늘어선 밝고 매끈한 건물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도드라진다. 건물 사이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유독 조용히 숨을 죽인 회색 건물이 보인다. 얼기설기 철망으로 덮인 건물은 방송인 황인용(69)씨가 '은퇴 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카메라타 뮤직스페이스'다. 4년이 지난 지금, 카메라타는 황씨에게 "외국에 가서도 눈에 어른거려서 자꾸 돌아오고 싶은 공간"이 됐다.

    카메라타는 음악감상실이라는 아기자기한 어감(語感)보다, 훨씬 넓고 천장이 높다. 3층 높이의 건물을 단층으로 만들어, 가장 높은 곳이 10m에 이른다. 벽은 콘크리트를 마감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사용했다. 짓다 만 것 같은 건물은 황씨의 아날로그에 대한 애착이 반영된 것이다. "원래 오래된 나무나 한옥 같은 아날로그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설계를 맡은 조병수씨에게도 '새집 말고 헌 창고같이 지어달라'고 부탁했지요. 가끔 건물 공사가 다 끝난 게 맞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하하."
    음악감상실 내에 있는 앰프와 LP판 1만5000여장 등을 보여주던 황인용씨는“방송국에 입사하자마자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마냥 좋았다”며“1970년대 아나운서 시절엔 월급이 너무 적어 꿈만 꾸다가 나중에 돈 벌어 샀을 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고 했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카메라타는 황씨의 실현된 꿈이다. 음악과 오디오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언젠가 음악감상실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해왔다. 막연한 생각은 황씨의 고향 파주에 예술인 마을 헤이리가 생긴다는 짧은 신문 기사 덕분에 구체화 됐다.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고, 또 용돈 벌이도 할 수 있는 음악감상실을 내면 좋겠다 싶었다. 황씨는 "헤이리 소식을 듣자마자 용기가 생겼다. 이 곳에서 음악감상실을 여는 것이 나의 운명인 것 같다"고 했다.

    카메라타는 음악의 울림을 위해 천정을 가능한 높였다. 그러면서도 과도한 울림을 막기 위해 천정에는 원목을 설치했다. "사실 음악 감상실을 제대로 만들려면 정말 전문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마음이 부담스럽고, 그러면 사람이 공간에 끌려 가게 됩니다. 지금도 공연장처럼 아주 포근하고 울림 있는 소리가 나와서 아주 좋습니다."

    카메라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피커만큼은 전문가나 오디오 마니아들도 부러워할 정도의 '물건'들이다. 1930년대 독일산으로 꾸준히 대중 앞에서 쓰였던 빈티지 스피커들로, 황씨가 1980년대 TBC 방송국에서 나와 프리랜서 활동을 하면서 수입이 나아지자 하나씩 사 모은 애장품이다. 황씨는 요즘에도 지금까지 모아온 LP판 1만5000장 중에서 직접 하나씩 골라 턴테이블에 얹는다.

    아내와 지내는 집은 바로 옆 건물이지만, 황씨는 눈을 뜨면 헤이리 주변을 산책한 후 카메라타에 앉아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처음엔 음악보다 이런 황씨를 보러 오는 중년층 손님이 많았다. 인터뷰 도중에도 중년 주부들이 찾아와 황씨를 보고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하지만 음악감상실로 입소문이 난 지금은 점점 음악 자체를 즐기러 오는 젊은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음악감상실을 연 후 황씨는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얽매여 있다. 외부 약속도 거의 잡지 않고 말뚝처럼 카메라타를 지킨다. "밖에 나가서도 이곳의 LP판, 걸려있는 벽걸이까지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요. 외국에 나가서도 이곳 생각만 납니다. 편안하고 좋아서 돌아오고 싶은 거지요. 내 자신을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그는 "공간에 의해서 사람의 의식과 생활 양식이 바뀐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고 했다.

    황씨가 카메라타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손님들이 찾지 않는 조용한 아침이다.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한쪽 벽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온전히 즐긴다. "책을 처음 읽을 때와 한참 지나 다시 읽을 때 느낌이 다르듯이, 음악도 그렇습니다. 들을 때마다 새롭지요. 그래서 음악을 시간의 예술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끝이 없는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황인용씨는…

    1940년 1월 1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지금은 없어진 동양방송(TBC) 3기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80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TV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영 팝스',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등 여러 방송을 진행했다. 1995년 MBC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4년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고전음악감상실 '카메라타(Camerata)'를 개업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카메라타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방'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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