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만에 베일 벗은 비무장지대… 평야지역엔 울창한 산림 대신 덤불

    입력 : 2008.11.15 03:12

    ● 휴전협정 체결후 처음으로 생태계 조사
    南·北 매년 군사목적으로 맞불… 산림 훼손
    포유동물 많지 않아… '우포 늪' 2배 습지발견
    평야지역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가치

    14일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연천평야의 한 냇가에서 두루미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후 55년간 베 일에 가려 있던 비무장지대의 생태계가 이날 처음 공개됐다. /환경부 제공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후 55년간 출입이 통제됐던 비무장지대(DMZ) 생태계에 대한 첫 현장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DMZ의 실상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평야지대엔 울창한 산림 대신 갈대나 덤불이 우거졌고, 대형 포유동물들은 DMZ 바깥지역보다 훨씬 더 적었다. 남북이 거의 해마다 군사 목적으로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해 DMZ에 맞불을 놓는 일이 벌어지면서 산림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DMZ 생태계 민관합동조사단(단장 서울대 김귀곤 교수)은 14일 경기도 연천군과 파주시 일대 등 DMZ 서부지역에서 지난 10일부터 이뤄진 DMZ 생태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DMZ 조사서 발견된 희귀동식물 (좌측 상단 부터) 쥐방울덩굴, 호사비오리, 묵납자루, 어름치
    조사단은 이날 "짧은 조사기간이었지만,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와 검독수리, 수달, 삵 같은 법정보호종 13종을 발견했다"며 "평야지대의 산림훼손을 제외하면 군데군데 보전가치가 높은 습지가 자리잡고 있는 등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DMZ의 가치를 눈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임진강 지류인 사미천 서쪽에 내륙습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우포늪의 두 배(450만㎡) 남짓한 연천평야 습지를 발견한 것도 큰 성과"라고 조사단은 전했다.

    각 분야 생태전문가 21명으로 꾸려진 조사단은 DMZ 내부(군사분계선~남방한계선 사이)의 군부대 수색로를 걸어 다니며 동식물 서식실태와 경관 등을 조사했다. 조사단은 "DMZ가 때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면서도, 보통의 자연생태계나 일반인의 상상과는 다른 '독특한' 점들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①사람에게 경계심 푼 DMZ 야생동물

    야생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피하는 습성을 갖고 있지만 DMZ 야생동물은 달랐다. 조사단이 주변에 다가가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등 별다른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루미는 조사단을 태운 차량이 10m 앞까지 접근해도 개의치 않고 먹이를 찾는 데 집중했고 꿩을 잡기 위해 수풀에 숨어있던 삵은 "(조사단이) 접근할 때까지 전혀 의식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척추동물과장은 "사람이 가까이 가지 않으면 도망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야생성(野生性)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위협이 전혀 없어 DMZ 야생동물들이 경계심을 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②'화공(火攻) 작전'이 연출한 독특한 풍경

    DMZ 생태계는 인간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은 '순도 100%'의 자연 그 자체는 아니었다. 상대방의 침투에 대비해 남북한 양측이 거의 해마다 화공 작전을 펴 수풀을 없애는 바람에 인공(人工)과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DMZ 특유의 풍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남북이 서로 불을 놓은 탓에 DMZ 평야지대엔 울창한 산림 대신 덤불이나 갈대가 무성한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김귀곤 조사단장은 "주기적인 불로 산림이 훼손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식물들이 해마다 다시 싹을 틔우며 자라나는 등 자연의 역동성이 넘치는 공간이 DMZ"라고 했다.



    ③참나무는 있지만 소나무는 없다


    참나무와 소나무는 국내 전체 산림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수종(樹種)이지만 이 역시 DMZ에선 예외였다. 김귀곤 단장은 "산불이 미치지 못한 일부 산간지역을 제외하면 화공 작전으로 불길이 휩쓴 평야지대엔 소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비교적 불에 잘 견디는 참나무와 달리 소나무는 불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서울여대 이창석 교수(환경생명과학부)는 "상수리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종류는 불에 타더라도 뿌리 근처에서 다시 움이 돋아나 되살아나는 반면 소나무는 송진이 많아 한번 불에 타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싹을 틔우기 힘들다"고 했다.



    ④DMZ는 토종 물고기의 안전지대

    한국자생어종연구협회 이학영 회장은 "DMZ 하천과 저수지에서 어른 팔뚝만한 어름치(천연기념물 259호)를 비롯해 짧은 조사기간에 총 20여종의 고유종이 발견됐지만 (큰입배스나 블루길 같은) 외래어종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외래종들이 사실상 점령하다시피 하며 토종 물고기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다른 지역과 달리 DMZ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반면 외래식물은 DMZ에 이미 침투했다. 김귀곤 조사단장은 "단풍잎돼지풀과 족제비싸리, 미국쑥부쟁이 같은 외래식물이 드물지 않게 관찰됐다. DMZ 생태계를 크게 위협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부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 식물들은 주로 수색로 주변에서 발견됐다. 국립산림과학원 신준환 산림환경부장은 "주로 DMZ 바깥 지역에서 (군화나 군복 등에) 씨앗이 묻어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⑤서부지역 DMZ엔 포유동물이 드물다

    포유동물로는 수달과 삵을 비롯해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등이 발견됐다. 다만 그 개체 수는 DMZ 바깥보다 훨씬 더 적은 편이었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과장은 "농경지가 없는 DMZ에선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체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DMZ 서부지역은 평야지대가 많아 산림에 주로 사는 포유동물이 상대적으로 적게 관찰됐다"고 했다. 한편 과거 연천군 일대에 호랑이가 서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조사에서 호랑이와 반달가슴곰 같은 대형 포유동물의 흔적은 없었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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