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독재자였다고요? 그는 단지 카리스마 넘치고 엄격한 규율을 지닌 지휘자였을 뿐이에요. 그는 자신에게 요구하는 똑같은 기준을 언제나 단원들에게도 원했지요."
올해 탄생 100년을 맞은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부인 엘리에트 폰 카라얀(Eliette von Karajan· 73·사진)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그녀는 1989년 남편 타계 이후 음반과 영상, 각종 기록을 정리하는 '카라얀 재단' 운영 외에는 공개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두문불출해왔다. 하지만 올해 카라얀 탄생 100년과 이들 부부의 결혼 50년을 맞아, 엘리에트는 자서전을 내고 세계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최근 독일어로 출간된 그녀의 자서전 제목은 '그의 곁에서의 내 삶(Mein Leben an seiner Seite)'이다.
"남편에 대해 언론이 묘사했던 이미지와 실제 사생활은 너무나 달랐어요. 상류 사회나 사교계와 떨어져서, 겨울이면 두 딸과 함께 스키나 썰매를 즐겼고, 여름이면 저와 딸들을 태우고 요트를 타며 행복해했어요."
프랑스 모델 출신의 엘리에트는 17세 때인 1951년 카라얀을 처음 만났다. 디오르의 웨딩 드레스 모델로도 활동했던 엘리에트는 1958년 카라얀과 결혼 이후 이자벨과 아라벨 두 딸을 낳았다. 엘리에트는 아마추어 화가로 활동하면서 남편의 80세 기념 음반 표지에 자신의 그림을 싣기도 했다. 엘리에트는 "프랑스에서 처음 만난 뒤, 이듬해 런던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녹음과 연주가 끝나고 재회하면서 우리의 훌륭한 만남이 시작됐다"고 기억했다.
엘리에트는 1984년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 당시 남편과 동행한 것으로 한국과 인연이 있다. 당시 음악계에서는 '엘리에트가 잃어버렸던 지갑을 한국 음악 팬이 찾아줘서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엘리에트는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아쉽게도 (한국이 아니라) 그 몇 해 전에 인도 뭄바이에서 빈 필하모닉과 공연했을 당시 일어났던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 엘리에트는 자서전 출간과 함께 남편의 방대한 녹음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직접 골라서 남편을 위한 헌정 음반(도이치그라모폰)을 내놓았다. 두 장으로 구성된 이 음반은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의 2악장으로 시작한다.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 부부는 언제나 자연 속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나 드뷔시의 '바다'를 지휘할 때에도 남편의 음악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 필과 한국을 찾았을 때 남편이 처음 연주한 곡도 바로 이 곡이었다"며 24년 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