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람사르 등록습지 ⑤ 서귀포 물영아리] 습지·육지 식물이 나이테처럼 자라

입력 2008.11.01 03:06 | 수정 2008.11.01 09:01

장마땐 호수·건조기엔 습지… 생태계 역동적
물장군·맹꽁이·영아리난초 등 희귀생물 서식

지난 30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물영아리 오름(기생화산의 제주사투리). 입구에 설치된 탐방안내소가 등반객을 맞이했다. 자연해설사의 뒤를 쫓아 삼나무 숲 사이로 조성된 계단식 목재 등반로를 따라 오르기를 30분. 해발 508m의 오름 정상부 울창한 숲 사이로 함지박 형태 분화구가 눈에 들어왔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백록담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화구호 습지였다. 30여m 길이 관람대에 올라서자 습지는 어느덧 겨울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제주 화산섬의 대표적 오름 분화구 습지

화산섬인 제주에는 백록담을 포함해 분화구에 호수나 늪 등 습지가 있는 오름이 20곳 있다. 물이 고여있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물영아리 오름 습지는 이들 오름 분화구 습지 가운데 처음으로 람사르 협약 습지로 등록될 정도로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 원시적 생태계가 남아있을 뿐 아니라 난온대(暖溫帶)와 냉(冷)온대 산지 습지의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둘레 300여m, 깊이 40여m 규모의 물영아리 습지(습지보호지역 지정 면적은 30만9244㎡)는 하천이나 지하수 등 외부에서 유입되는 용수가 따로 없고, 빗물이 유일한 수원이다. 그래서 장마철에는 호수로 변하고 건조기에는 습지로 변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 생태계가 역동적이다.

습지 중심부에는 세모고랭이, 물고추나물, 보풀, 뚝새풀 등 습지식물이 잘 분포돼 있다. 습지 가장자리로는 길가 돌담 사이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고마리 군락이 넓게 퍼지고 있어 습지가 '육지화'되고 있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습지 경계 밖으로는 복분자 딸기와 좀찔레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분화구 주변에는 때죽나무와 예덕나무, 찔레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연스럽게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다. 습지와 주변에서 습지 식물과 육지화 식물이 나무 나이테 모양을 띠며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습지의 일생'을 시·공간을 초월해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물영아리만의 독특함이다. 물영아리 습지에서 생태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상배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위원장은 "분화구 내 습지의 육지화 과정과 습지생태의 물질순환을 연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물영아리 습지"라고 말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물영아리 오름 정상에 있는 습지. 풀들이 겨울을 맞기 위해 누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종현 객원기자 grapher@chosun.com

물영아리의 또 다른 특이점은 햇볕이 잘 드는 북쪽 면과 겨울 바람을 직접적으로 맞는 남쪽 면의 식생이 다르다는 점이다. 북쪽 면에는 참식나무 등 난온대 상록활엽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반대로 남쪽면에는 단풍나무 등 냉온대 낙엽활엽수가 넓게 형성돼 있다. 등반로 주변으로 형성된 숲 그늘에는 섬새우난, 금새우난, 사철란 등이 분포돼 있는 등 210종의 식물상을 보이고 있다. 또 동물 역시 양서·파충류인 맹꽁이·유혈목이·참개구리, 포유류인 노루·오소리·족제비, 곤충류인 물장군·고추잠자리·왕잠자리·노란실잠자리 등 47종이 관찰되고 있다. 이 중 물장군과 맹꽁이 등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 동물이다. 지난해 8월에는 국내에서 보고되지 않았던 난초인 '네르빌리아 니포니카' 1종이 발견돼 '영아리난초'로 명명됐다.

왼쪽부터 영아리난초, 노랑턱멧새, 맹꽁이.

전국 최초 습지보호지역, '휴식년제' 도입 검토

물영아리 오름 습지는 습지보전법이 제정된 2000년 1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2007년 7월 등산로가 정비될 때까지 생태계 보호를 위해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다.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 제주사무소는 2005년 1억7000여만원을 투입해 탐방로와 안내소, 동식물 해설판, 울타리 등을 설치했다. 또 올해 7000여만원을 들여 탐방안내소를 확장하고 발효식 화장실과 주차장도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도로(남조로)변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난 물영아리 오름은 자연학습 목적의 탐방 이외에 오름 동호회나 친목회 등의 단체탐방 발길이 이어지면서 보전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제주도는 최근 탐방로 이외의 등반을 엄격히 통제하고, 하루 탐방객 수를 30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급기야 제주도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오름 휴식년제' 대상에 물영아리 오름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물영아리. /이종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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