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터뷰] 호사카, "일(日)사이트 댓글 80%가 날 욕하지만 독도는 분명한 한국 땅"

입력 2008.10.26 22:14 | 수정 2009.01.19 15:13

本紙에 '독도 사랑' 만화 연재 이현세·호사카씨
이현세, 딱딱하고 재미없는 얘기 독자에 쉽게 전달하려 고민
영어·일어판 배포 계획도
호사카 유지, '매국노' '일본명(名)버려라' 공격
일본 극우 세력의 테러 우려에 아내와 아이 이름 밝힐 수 없어

지난 20~24일 조선일보에 만화 '독도 사랑'을 연재한 이현세(李賢世)·호사카 유지(保坂祐二)씨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1956년 생 동갑내기이자 세종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동료 교수이다. 독도는 두 사람을 묶어주는 또 하나의 끈이다. 이현세씨는 2005년부터 명예독도경비대장을 맡고 있고, 호사카씨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룬 책과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두 교수가 이번에 의기투합해 연재한 '독도사랑'은 한·일 간에 복잡하게 얽힌 독도 영유권 문제를 그간 나왔던 어떤 책자보다 대중들이 알기 쉽게 설명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조선일보에는 "독도 만화를 책으로 만들어 보급해달라"는 독자들의 주문도 이어진다. 108년 전인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칙령 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군에 편입시키고, 독도가 우리 땅임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다. 때마침 10월 25일을 '독도의 날' 기념일로 제정하자는 시민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99주년이기도 한 26일 오후, 이현세·호사카 유지 교수를 인터뷰했다.

이현세(왼쪽)와 호사카 유지 교수는“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일본이 문제를 일으킬 때만 독도 얘기가 나오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독도 사랑' 만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주변 반응은 어떤가.

호사카 유지=일본 인터넷 사이트에까지 우리가 만든 '독도 사랑' 만화를 올렸다고 전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반응은 상상 이상이다. 독도를 우리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큰 반향을 일으켜 보람을 느낀다. 독도에 대한 관심은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일본측이 문제를 일으키면, 갑자기 뜨거워진다. 독도가 평소에도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사랑 받는 대상이었으면 했다.

이현세=만화가로서 사회에 기여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만화가협회에서 독도 만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와서, 호사카 교수를 원작자로 추천했다. 지난 8월 우리 대학 교수연수회 때 호사카 교수 특강을 들었다. 독도가 무조건 우리 땅이라고 우기는 게 아니라, 일본측 논점을 설명하면서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 귀화했다지만, 일본인이 이런 얘기를 한다는 데 놀랐다.

(호사카 교수는 2003년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2002년 월드컵 열기가 주요한 동기가 됐다"고 말한다. 1986년 결혼한 한국인 아내와 딸·아들 3남매를 뒀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가.

호사카=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연구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연스레 독도 영유권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2000년부터 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일본의 공식 고(古)지도 가운데 대부분 독도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05년 한국에서 '일본 고지도에는 독도가 없다'는 책을 냈다.

=한·일 간의 가상 전쟁을 다룬 만화 '남벌'을 그리면서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만화에선 휴전 협정의 하나로, 독도를 한국 영토로 영구적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경주 출신이라 신라를 비롯, 역사에 대한 관심과 동경이 많다. 독도를 만화로 그리는 것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호사카 교수는 귀화했다고는 하지만 일본에 가족과 친지도 많을 텐데….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는 근거를 찾아 발표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나.

호사카=내 이름을 야후 재팬 같은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 입력하면, 관련 댓글이 200~300건씩 주르륵 뜬다. 80% 정도가 욕설로 도배했다. 매국노라고 욕하거나 한국인이 됐으니 일본 이름을 쓰지 말라거나, "너의 논리는 틀렸다. 한국인을 속이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호사카 교수는 아내와 자녀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일본 극우 세력으로부터의 해코지가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의 지인들은 가끔 한국 언론 보도를 보고 '위험 수위를 넘은 것 같으니 조심하면 좋겠다'는 메일을 보내온다고 했다.) 예전에 나가사키 시장이 일본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말한 지 2년 뒤에 저격당했다. 2년이 흘렀는데도, 그 발언을 잊지 않고 테러를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지식인들은 마음 놓고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일본 출신으로 모국의 반대편에 선다는 갈등은 없었나.

호사카=고려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몇 단계 고비를 넘겼다. 석사논문으로 김옥균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후쿠자와는 일본에선 문명 개화사상가로 존경 받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그의 전집을 읽었더니, 조선을 일본 영토로 삼아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이 나왔다. 고민을 많이 했다. 논문 심사위원이었던 조정남 선생님께서 연구자는 있는 사실 그대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이런 단계를 몇 번 거치면서 진실의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다지게 됐다. 독도 문제를 연구할수록,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의 친구들에겐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구체적 자료로 제시하면, 수긍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교수로서 그냥 연구만 하지…" 하는 안타까움도 얘기한다고 했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만화로 그릴 때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독도에 대한 진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힘들었다. 도대체 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얘기를 어떻게 해야 독자들이 재미있게 느낄 수 있게 그릴 것인가 고민했다. 보통 사람들이 독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술자리에서도 쉽게 남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다.

―만화가로서 독도 영유권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활동할 생각인가.

=만화가협회를 중심으로 독도 사랑 만화를 우리 말뿐 아니라 영어, 일어로 만들어서 독도 관련 단체와 함께 배포할 계획을 갖고 있다. 독도를 강치나 바다 타잔 같은 이미지로 형상화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중국측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허구성도 만화로 만들어 그 논리를 반박하면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현세

까치와 엄지가 등장하는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 만화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있다.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 같은 아동용 학습 만화에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의 작품은 최근 드라마와 영화로도 활발하게 제작 중이다. '공포의 외인구단'과 골프만화 '버디'는 드라마로 만들고 있고, '남벌'과 '개미지옥'은 영화화를 준비 중이다.


호사카 유지는

도쿄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한 후, 198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2000년 고려대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 분석: 조선과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일 관계사와 독도 관련 과목인 '역사와 한국의 영토'를 강의하고 있다.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일본 우익 사상의 기저 연구'(보고사) 등 저서가 있다.

조선일보에 만화독도사랑을 연재한 이현세 호사카유지씨가 대담. /이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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