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사회민주주의가 힘 합쳐 선진화 길로" "보수가 혁신하려면 뉴라이트 새로워져야"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08.10.21 03:07

    시대정신 주최 '보수와 진보의 공생 모델 있나' 심포지엄
    보수·진보 지식인 4명씩 참석 '미래를 위한 설전' 펼쳐

    "극단적인 이념 대립이 정치적인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우정에 기초한 관용과 설득을 통해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진화의 필수조건인 국민통합이지요."(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시대정신 이사장)

    2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선 최근 들어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행사가 열렸다. 사단법인 시대정신(옛 뉴라이트재단) 주최,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국민통합 심포지엄 '선진국가 건설을 위한 보수와 진보의 공생(共生) 모델은 있는가'였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정국 혼란으로 인해 당분간 수습조차 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됐던 좌·우의 이념적 균열을 극복하고 다시금 통합의 가능성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진영 양쪽에서 4명씩 모두 8명의 지식인들이 참석,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틀 위에서 '미래를 위한 설전'을 치열하게 펼친 자리였다. 이 자리를 마련한 '보수' 쪽의 안병직 이사장은 "(진보쪽 분들이) 이 자리에 나와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진보 진영에서도 토론할 일 있으면 불러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20일 사단법인 시대정신 주최로 열린‘국민통합 심포지엄’에 참석한 지식인들. 왼쪽부터 주대환₩김주성₩강경근₩안병직씨, 박 범진 전 한성디지털대 총장(사회), 주섭일·조희연·김수진·김세중씨. 유석재 기자

    "민주·시장경제 틀은 이미 확고"

    언제까지 서로를 '꼴통수구세력'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흘겨보는 세력'이라고 매도할 것인가? '시대정신으로서의 국민통합'을 발표한 안병직 이사장은 "대한민국이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통해 선진국에 비교해도 손색 없는 훌륭한 독립자존의 시민사회가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 내용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이미 진입했으며, 이제 이것을 바꾸는 '혁명'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념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보수)와 사회민주주의(진보)로 한정되는 것이다. 그것을 추구하는 양 진영이 협력해 선진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안 이사장은 말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진보' 쪽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보수의 혁신을 위해서는 뉴라이트 또는 신(新)보수가 말 그대로 새로워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북 관계에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수구적 보수'가 전체 보수 진영을 장악하는 구조가 계속 작동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그 점에서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된 한국에서 다양한 사상적 발전을 위해 이제 반공주의는 거둬들일 때가 된 것 같다'는 안 이사장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진보 진영은 민주주의를 정립했고, 그 뒤로 자신이 세운 틀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은 이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이 두텁게 확립된 나라"라며 안 이사장의 견해에 동조했다.

    "사회민주주의 선진화에 기여"

    이날 '이념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를 발표한 '진보' 쪽의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으로서 당내 다수파였던 NL(자주파)의 친북(親北) 성향을 비판해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던 인물이다. 주 대표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통해서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밖에 없다는 사상"이라 설명했다. 자본주의의 사회 양극화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가 가진 사유재산 제도와 시장경제를 긍정하는 실용주의 철학을 지닌 사상이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 남한 정부를 선택한 조봉암처럼, 사회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긍정하며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보수' 쪽의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일단 "사회민주주의가 실질적 세력으로 자리잡는다면 한국 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그러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중산층 중심의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과 과제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고 실용적인 대안 제시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노동·복지 근본주의에 빠져 사회의 불안정과 성장 동력의 형성을 어렵게 하는 집단이라는 인상을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다.

    "법치주의 인정" vs "반공주의 탈피"

    '보수' 쪽의 강경근 숭실대 교수는 발표문 '산업사회의 성립과 입헌민주주의'를 통해 "규범이 아니라 현실과 이념에 경도돼 '무(無)규범'의 국가생활을 해 온 지난 10년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제헌헌법과 건국,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입헌적 정통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 쪽의 주섭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코리아 명예회장은 "반공이념에서 해방돼야 한다. 그래야 극우·파시스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민생을 위한 진정한 온건보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구처럼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혁명으로 전복시키지 않는다고 선언한 정치세력은 경쟁체제에 끌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는 "보수 진영은 정당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사회의 공론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일반 대중이 권력을 위임 받게 되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협한 시각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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