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왼쪽), 김정일(오른쪽).

조지 W 부시(Bush) 미 대통령이 병상(病床)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는 지적이 미국 내에서 나오고 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 유엔대사로 일했던 존 볼턴(Bolton)은 11일 미국의 대북(對北)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95% 북한의 완벽한 승리"라고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8월까지만 해도 북핵 검증계획서가 미흡할 경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북한이 불능화 조치 중단→영변 핵시설 복구 움직임→미사일 발사로 위기국면을 조성하자, 결국 두 달 만에 북한의 협박에 굴복, 입장을 바꿨다.

미국이 이번에 합의한 북핵 검증 합의서에는 2002년 시작된 2차 북핵 위기의 원인인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는 전혀 명시돼 있지 않다. 검증합의서는 국제 사찰팀이 '상호 동의(mutual consent)'에 의해서만 북한의 미신고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HEU 관련 시설이나 핵 폐기물 저장소에는 북한이 접근을 거부할 경우 뾰족한 검증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이미 10여 개의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 50~60㎏이 추출된 영변 핵시설 외에 다른 의혹 시설에 대한 사찰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북한은 자신들의 기존 입장은 전혀 바꾸지 않은 채 다음에도 빠져나갈 구멍을 충분히 확보해 놓은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2일 이번 조치로 앞으로 대북 협상에서 또 다른 난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부시의 대북정책은 지난 8년간 초강경→대화→양보 단계를 거치면서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변화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취임한 후, 2002년 1월 29일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고, 이후 북한과의 양자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는 '적대적 무시(malign neglect)'정책을 써왔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0월 북한이 핵 실험을 해,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된 뒤에야 미·북 양자회담을 수용했다. 그러나 실제 비핵화의 핵심인 검증 단계에서도 애초 목표를 이루지 못해 8년간 김 위원장과의 대결에서 실패한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