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터뷰] "PD수첩 제작진 '번역 탓' 발뺌… 정말 황당했어요"

조선일보
  • 염강수 기자
    입력 2008.10.13 05:36 | 수정 2009.01.19 15:23

    '광우병 왜곡 보도' 폭로한 정지민씨
    내 번역과 다르게 TV 자막 넣고선 "번역 잘못"이라니…
    사실 밝히는데 익명에 숨을 이유 없어 실명으로 폭로
    극히 희박한 가능성 모아 위험 과장… 무책임한 PD수첩
    객관적이지 못한 방송으로 우리 사회에 나쁜 영향 미쳐

    정지민씨는“부모님이 반대하고, 개인적으로도 길에 나서면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사진촬영은 여전히 사양했다. 본지는 정씨의 동의를 얻어 정씨를 캐리커처로 처리했다.

    지난 4월 29일 방영된 MBC PD수첩 '광우병' 편은 이후 두 달 이상 지속된 '촛불집회'의 도화선이 됐다. PD수첩 방영 이후 10대 청소년들까지 거리로 나와 "나는 죽기 싫다"고 외쳤다. 충격적인 영상 앞에 과학은 설 자리를 잃었고, 정체 불명의 광우병 괴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공동번역자로 PD수첩 광우병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던 정지민(26)씨는 이런 여론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물꼬를 튼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6월 25일 PD수첩 게시판에 올린 글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번역 및 감수 과정에서 동물보호단체가 찍은 주저앉는 소를 '광우병 우려 소'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지만 PD수첩 제작진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그 폭로 이후 PD수첩의 과장·왜곡 사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언론학계에서 기획의도에 사실을 짜맞추려는 PD저널리즘의 제작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도 잇따랐다.

    정씨는 지난 6월 폭로 당시부터 실명(實名)은 사용했지만 얼굴을 공개하고 취재진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적은 없었다.

    이런 정씨가 PD수첩 '광우병' 보도 6개월여 만에 처음 조선일보와의 대면(對面) 인터뷰에 응했다. 정씨는 여전히 "만날 수는 있지만 얼굴 사진 촬영은 사양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정씨는 "당시엔 내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이야기여서 어렵지만 실명으로 나섰던 것"이라면서 "하지만 얼굴 공개는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도 있기 때문에 원치 않았다"고 했다.

    ―지난 여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슈의 한가운데 서 있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박사과정 유학 준비를 하고 해외 학회지를 찾아 읽느라 그동안 바빠서 보지 못했던 영화도 많이 봅니다. 무성영화부터 시작해 개인적으로 모아둔 영화 DVD가 1000장이 넘어요."

    ―PD수첩 '광우병' 보도는 지난 4월 29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지민씨가 과장·왜곡 의혹을 폭로한 것은 6월 25일이었습니다. 왜 즉시 사실을 밝히지 않았나요.

    "4월 말에 PD수첩 번역을 마친 다음에는 영국으로 유학가는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바깥 세상 돌아가는 데 신경 쓸 틈이 없었어요. 당연히 내가 번역한 PD수첩이 어떻게 방영됐는지도 몰랐습니다. 내가 번역해서 넘긴 것만 보면 문제가 되거나 화제가 될 만한 내용이 없었으니까요."

    ―당시 '촛불집회' 때문에 대한민국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는데도 전혀 몰랐습니까?

    "6월 초쯤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촛불집회' 때문에 길이 막혀서 가던 길을 빙 둘러서 간 적이 있었어요. 지난 대선 때 온라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들이 많았던 반면 정작 투표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했잖아요? 저는 막연히 '온라인 여론'과 '오프라인 여론'의 괴리가 해소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시위가 벌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PD수첩에서 어떤 내용이 방영됐는지는 언제 알았나요?

    "정말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기사를 봤어요. 'PD수첩 광우병 편 해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아니 이게 언제 나간 방송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한번 들어가 봤죠. 내가 번역에 참가했으니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PD수첩 제작진이 책임을 번역 탓으로 돌리는 겁니다. 황당하더군요. 내가 했던 번역과 다른 내용으로 TV 자막을 넣었으면 그건 번역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PD수첩 게시판에 '왜 번역자 탓을 하느냐'는 글을 올린 뒤 6월 28일에 '광우병'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습니다. 그걸 보니 PD수첩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오역한 수준을 넘어 기획의도에 따라 왜곡을 했더군요.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실명이 언론에 공개돼 부모님이나 지인들이 걱정을 많이 하지 않았나요.

    "내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요. 사실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숨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했지만 저는 사실 좀 덤덤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 PD수첩이 과장·왜곡한 부분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사실 관계를 제쳐두고 '방송 탄압' 어쩌고 하는 표어나 구호로 공격하는 것쯤은 무시할 수 있었거든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이후의 해명 방송은 사실을 모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번역자가 '오버'해서 말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번역자가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거친 광우병 전문가도 아니라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영어밖에 모르는 애'라는 말도 들었어요. 저는 사학(史學)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사학자는 팩트(fact·사실)를 어떻게 확인하고 해석할지 고민하는 사람이죠. 가령 예를 들어 '쓰러지는 소'의 경우 원래 영상과 자료를 보면 '광우병 우려 소'가 도축됐다고 볼 근거는 없었어요. 동물학대가 문제였죠. 그걸 방송에서 '광우병 우려 소'가 도축돼 유통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잖아요. 이걸 꼭 광우병 전문가가 봐야 아는 걸까요?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PD수첩의 PD들은 광우병 전문가였습니까?"

    ―PD수첩의 과장·왜곡 의혹이 밝혀졌지만 PD수첩 제작진은 '결과적으로는 광우병 소고기에 대한 위험을 알리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관계를 왜곡해서 보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됐다는 이야긴가요? 극히 희박한 가능성들을 모아서 마치 위험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도를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그런 객관적이지 못한 방송 때문에 엄청나게 큰 시위가 벌어진 것은 우리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관계를 뒤바꾼 주장이 사회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말 자체를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의 '음모론'이 만연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가요?"

    ―공개 비판 이후 심적인 고통을 많이 겪지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포털 등에서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 욕설을 하며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일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만약 문제가 있으면 법적인 대응도 하겠다고 나가니까 그런 글은 거의 자취를 감추더군요. 제가 막연한 주장을 한 것도 아니고, 보고 아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움츠릴 이유가 없잖아요. 시간이 지나자 공격하는 사람보다는 저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혼자서 고생하는데 돕고 싶다면서 '내가 이런 분야는 잘 아는 데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제게 제안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박사과정 유학 준비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지난 여름의 경험 때문에 내 인생에 특별한 변화는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꿈꿔왔던 대로 학자가 되고 싶어요. 어느 대학으로 가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정지민씨는

    10세 때 부모를 따라 영국에 갔다가 17세 때 귀국했다. 올해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서양사를 전공했고, 지성사(知性史)에 관심이 많다. 2001년부터 프리랜서 번역자로 방송계에서 일했으며 'KBS 일요스페셜' 등 50여 편의 프로그램 번역에 참여했다. PD수첩 '광우병 보도'의 과장·왜곡 의혹을 폭로한 이후 자신을 공격하는 글이 나오면 자신이 만든 까페에서 일일이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정씨는 "대학원 수업에서는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이 많았다"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반박하는 일은 원래 익숙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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