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이인식의 멋진 과학] 잘 놀라면 우파다

조선일보
  • 이인식
    입력 2008.10.11 03:17 | 수정 2008.10.15 08:58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상대방 지지자를 설득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러한 선거 운동이 시간 낭비일지 모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유권자의 정치적 입장이 대체로 태어날 때부터 뇌 안에 일찌감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령 보수주의자에게 진보적인 가치관을 갖도록 설득하는 것은 부질없는 헛수고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이 유전자에 의해 부분적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은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근년 들어 이를 뒷받침하는 논문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2005년 미국 라이스대 정치학자 존 앨퍼드는 '미국 정치학평론(APSR)'에 쌍둥이 3만 명의 정치적 견해가 포함된 행동유전학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앨퍼드는 유전자 전부를 공유한 일란성 쌍둥이가 정치적 질문에 대해 유전자 절반을 공유한 이란성 쌍둥이보다 똑같은 답변을 더 많이 하는 것을 밝혀냈다. 예컨대 부동산 세금 문제에 대해 일란성 쌍둥이의 80%가 동일한 답변을 한 반면 이란성 쌍둥이는 3분의 2가 같은 대답을 했다.

    2006년 미국 뉴욕대 심리학자 존 조스트는 계간지 '기초 및 응용 사회심리학(Basic and Applied Social Psychology)' 제4호에 생물학적 조건이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조스트는 2001년 9·11테러 공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정치적 신조의 변화 여부를 조사했다. 실험대상자들은 민주당원과 무소속마저 9·11테러 이후 자유주의로부터 발을 빼고 보수주의로 전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테러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나서 폭력과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심리적 욕구에서 비롯된 결과로 분석되었다. 보수주의로 돌아선 사람들은 테러를 군사적으로 보복하고 싶은 욕망, 종교와 애국심에 대한 새로운 관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자유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이 공포에 질리면 정치적으로 우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조스트의 연구결과는 존 앨퍼드에 의해 재확인됐다. 2008년 '사이언스' 9월 19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앨퍼드는 강력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보통사람 4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한 결과 위협을 느낄 때의 생리적 변화와 정치적 견해 사이에 관련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험은 두 가지로 진행됐다. 하나는 위협적인 그림, 가령 얼굴에 거미가 기어 다니거나 선혈이 낭자한 사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피부에서 전류가 얼마나 쉽게 흐르는지를 측정했다. 다른 하나는 실험대상자의 눈 아래 근육에 센서를 달아놓고 갑자기 큰 소음이 들릴 때 얼마나 자주 눈을 깜박거리는지 기록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피부에 전류가 쉽게 전도되고 두 번째 실험에서 남보다 눈을 격렬하게 깜박거린 사람들, 다시 말해 겁을 잘 먹고 깜짝 놀라는 반응을 나타낸 사람들은 미국 보수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라크전쟁·군비증강·사형제도를 지지한 반면에 동성 결혼·임신 중절·해외 원조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한편 놀라는 반응이 느린 사람들은 자유주의 노선을 신봉했다. 여러분도 놀라는 정도에 따라 우파인지 좌파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