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대학생과 이효리

    입력 : 2008.10.06 22:18 | 수정 : 2008.10.06 23:16

    가족外 '본받을 인물 1위'
    이념 대신에 현실 획일화

    최보식·사회부장
    주말 밤 누워서 TV를 봤다. '대학가요제'가 생중계 중이었다. 출전한 대학생들은 연예인처럼 분장하고, 연예인처럼 요란하게 드러낸 채, 연예인처럼 노래 불렀다. 막간(幕間)에 이런 장면이 나왔다. "대학생 1000명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본받고 싶은 인물은?"

    순위 결과 연예인 이효리씨가 네 번째였다. 1위는 본받고 싶은 인물 없음, 2위는 아빠, 3위는 부모, 5위는 엄마였다. 혈연관계가 없는 외부인으로는 연예인 이효리씨가 단연 선두였다. 조사 대상 1000명의 표본이 어떻게 추출됐는지는 모르나,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은 '화려한' 스타연예인에게 있었던 것이다. 특히 여대생의 몰표를 받았다고 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만했다. 이효리씨는 예쁘고 섹시하지, 춤 잘 추지, 돈 많이 벌지, 성격도 좋을 것 같다. 어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다. 본받고 싶은 게 아니라 "아예 그대로 빼닮고 싶다"고 합창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효리씨는 의기양양할 것이 아니고 세월을 잘 만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의 '7080' 대학시절이라면 이런 '영광'은 어림도 없었다. 대학생만 되면 자동으로 '지성(知性)'이니 '지식인'처럼 행세하려고 했던 그 시절에는 단언컨대 이효리씨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욕망과 부러움을 마음 속에 몰래 감춰둘지언정. 심지어 대학 캠퍼스 안에서 "대중상업주의를 거부한다"며 연예인들의 공연을 무산시키는 '오만'도 있었다.

    그 시절 대학생이 지금 대학생보다 더 잘나서 그랬을까. 대학생이 되는 '훈련 과정'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거꾸로다. 지금은 중학교 때부터 자정 넘도록 학원과 과외를 하고, 전과목 내신을 완벽히 지켜야 하고, 봉사점수까지 따야 한다. 실제 내 자식을 그렇게 지켜봐 왔다. 거의 전분야에서 어린 학생을 개조해 완벽한 르네상스적 인간의 예비단계까지 가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지금 살았다면 아마 대부분 이 관문에서 탈락했을 공산이 높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비교가 된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거리나 주점(酒店)에서 보냈다. 단지 알량한 이념서적 몇 권 읽은 걸로, 스스로 대단한 척했을 뿐이다. 학생은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훈장'으로 여기고 교수님은 칠판에 '휴강'이라고 적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지식의 양(量)이 공부한 시간의 양에 비례한다면, 우리는 요즘 대학생들의 발끝에도 못 따라갈 것이다.

    이처럼 어렵게 성취를 한 요즘 대학생들은 "연예인을 본받고 싶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는 차마 그런 말을 못 꺼냈다. 그때는 민중운동, 사회개혁, 배운 자의 도리, 혹은 우주(宇宙) 속의 한계적 존재 등에 빠져 '허황한' 논쟁을 벌이고 고민할 줄은 알았지 연예인의 옷차림, 돈, 가십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대학생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것처럼 여겼던 것 같다.

    이런 자존심을 요즘 대학생들은 너무 일찍 버리는 것이 아닐까. 더이상 지성과 지식인의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 세상 흐름 때문인지, 아니면 바깥 사회의 험난함을 미리 읽어내는 조숙함 때문인지. 연예계 풍조에도 너무 쉽게 물들고 사회 현실에도 너무 쉽게 순응한다. 반역(反逆)의 맛이 없다.

    우리 세대는 대학 시절 '이념'에 쏠려 획일화됐다는 딱지가 붙었다. 하지만 그런 세월을 보낸 우리의 눈에는 요즘 대학생들에게도 그런 딱지가 언뜻 보인다.

    얼마 전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자기 주견(主見)이 별로 보이지 않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궁금해했다. "교육제도는 숱하게 진화했는데 왜 이들은 우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을까"라고. 순전히 나이를 더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요즘 대학생들에 대해 촌평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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