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러 군함 출동'… 잘못 걸린 소말리아 해적

조선일보
  • 이용수 기자
    입력 2008.10.02 00:02 | 수정 2008.10.02 02:55

    '납치한 배' 알고보니 탱크 등 실은 비밀 무기수송선
    美"무기거래 막자" 러 "자국선원 구출" 내세워 대치

    한 무리의 해적들이 지난달 25일 소말리아 해안에서 300여㎞ 떨어진 해상에서 커다란 화물선 한 척을 나포했다. 해적들의 해방구로 악명 높은 이 해역에서 해적질은 올해만 62번 발생했을 정도로 흔한 일이고, 대개 수백만~수천만 달러의 몸값이 오간 뒤 막을 내렸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사건 직후 미 해군 5함대 소속 9200t급 구축함 '하워드'호 등 미 군함 5~6척과 헬리콥터들이 출동해 같은 달 29일 해적들이 나포한 화물선을 에워쌌고, 러시아 해군도 프리깃함을 현장에 급파했다. 두둑한 몸값을 기대하던 해적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얼마나 큰 사건에 연루됐는지를 깨달았다.

    해적들이 납치한 배는 우크라이나 무기상이 운용해온 무기 수송선 '파이나'호였다. 1970년대 개발된 소련제 T-72 탱크 33대를 비롯해 로켓 발사기, 탄약, 전차의 장갑을 뚫을 수 있는 열화우라늄탄까지 실려있었다. 도합 3000만 달러(약 356억원)어치였다.

    하지만 이 무기들의 행선지에 대해선 당사자들의 말들이 모두 다르다. 우선 케냐 정부는 사건 직후부터 이 배가 케냐에 들어오기로 돼있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측과 무기 거래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반면 서방 외교관들과 미군은 이 무기들이 정부군과 반군이 맞서고 있는 수단에 전해질 예정이었다고 본다. 해적들도 같은 의견이다. 한 서방 외교관은 케냐를 경유지로 삼아 이 무기들을 수단으로 수송하는 비밀 거래가 진행돼왔다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다. 수단은 유엔과 미국의 무기 금수조치 탓에 무기를 직수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親)서방 성향의 케냐 정부는 우크라이나 무기를 구입한 적이 없다. 케냐의 해적활동 감시단체인 '항해자 지원 계획'의 앤드루 음왕구라(Mwangura)도 "케냐 정부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금수조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T-72 탱크.

    해적들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수굴레 알리(Ali)는 30일 뉴욕타임스와의 위성전화 인터뷰에서 "우린 그냥 큰 배가 보이기에 멈춰 세운 것뿐"이라며 "이 배가 무기를 싣고 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면서 몸값 2000만달러(약 237억원)만 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소말리아 정부는 몸값을 지불하면 해적질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미·러에 특공작전을 주문했다. 하지만 화물선에 폭발물이 잔뜩 실려 있는 데다 해적들이 선원 20명을 인간 방패로 사용할 것으로 보여 기습작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 해군이 사태에 개입한 건 해적들이 무기들을 소말리아의 이슬람 반군에 팔아넘기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이 대치 현장에 러시아 군함까지 자국 선원 구출을 명분으로 가세하면서 한탕을 노린 해적질로 시작된 이번 사태가 007 영화에나 나올 법한 국제적 사변으로 치닫게 됐다고 영국 인디펜던트는 논평했다.

    화물선 파이나호엔 우크라이나, 러시아, 라트비아 국적의 선원 20명이 승선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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