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사랑] 부자정승(父子政丞)

조선일보
  • 이덕일·역사평론가
    입력 2008.09.26 22:17 | 수정 2008.09.29 09:29

    1품을 극품(極品)이라고 하는데, 조선에서 정1품이 수장인 관청은 의정부(議政府), 충훈부(忠勳府:공신 관장), 의빈부(儀賓府:부마 관장), 돈령부(敦寧府:왕실의 친인척 관장) 등이었다. 의정부를 제외한 나머지 관청은 왕실에 대한 예우 차원의 명예직이었다. 의정부의 의정(議政) 셋은 모두 정1품 정승(政丞)으로, 대를 이은 정승들을 연상(連相)이라고 했다.

    유명한 부자 연상으론 황희(黃喜)·황수신(黃守身) 부자를 들 수 있는데 500년 조선 역사에서 수십 명에 불과할 정도로 숫자가 많지 않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정승인 조손(祖孫) 정승 중에는 남재(南在)·남지(南智)와 신숙주(申叔舟)·신용개(申用漑) 등이 유명하다. 선조 때 영의정이었던 홍섬(洪暹)은 부친 홍언필(洪彦弼)과 외조부 송질도 모두 영의정을 역임한 진기한 기록을 갖고 있다.

    연상(連相)이 반드시 영화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고종명(考終命)하지 못한 비운의 정승들도 여럿이다. 척화파 김상헌(金尙憲)의 두 손자 김수항(金壽恒)·김수흥(金壽興)은 모두 영의정에 올랐으나 김수항은 숙종 15년(1689) 남인들이 정권을 잡는 기사환국 때 진도로 귀양갔다가 사사(賜死:사약을 받음)당했으며, 김수흥 역시 기사환국으로 경상도 장기에 유배되었다가 숙종 16년(1690) 그곳에서 죽었다. 김수항은 사약을 마실 때 자식들에게 벼슬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그 아들 김창집(金昌集)은 벼슬길에 나와 숙종 43년(1717)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노론 영수였던 김창집 역시 경종 2년(1722)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성주(星州)에서 부친처럼 사사당했다.

    세종의 장인이었던 심온(沈溫)과 그 부친 심덕부(沈德符)도 부자 정승이었다. 심온은 태종의 왕권강화책에 희생당했으나 그 아들 심회(沈澮)가 영의정에 오르고, 그 외손 노사신(盧思愼)도 영의정이 되었으니 끈질긴 생명력이라 할 것이다. 일본의 정치세습이 화제인데, 신분제 사회도 아닌 민주사회에서 전범의 후예들까지 별다른 저항 없이 세습하는 것을 보면 그 속내(ほんね:本音)를 알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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