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땐 새 지도부 지원" 분명한 메시지 보내야

입력 2008.09.25 02:45

'김정일 이후' 우리는
[2] 金위원장 유고 후에도 北 체제 유지될 경우
주민 피부에 와 닿는 쌀·옷·의약품 등 집중 제공
강경파 막으려면 개혁 성향 엘리트 입지 도와야
중국에 北 개혁·개방 설득하도록 외교 강화해야

김정일(66)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이 확인된 이후 북한 변동 시나리오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것은, 김 위원장이 사망하거나 의식이 없어 '유고(有故)' 상태가 되더라도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경우(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다.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군부와 당 간부 등 300만 명이 기득권을 뺏기게 된다. 이들과 중국이 북한 붕괴를 가만 지켜보지 않을 것"(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이라는 관측이다.

새로운 지도체제 유형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유고 상태가 될 경우 북한의 지도체제는 ①3대 세습(世襲) ②집단지도체제 ③세습+집단지도체제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3대 세습을 하겠다고 하면 아무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경우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가까운 장남 김정남(37)이 유리하다'(백승주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는 관측과 '현철해 인민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과 결합된 차남 김정철(27)을 주목해야 한다'(통일연구원)는 견해로 나뉜다.

그러나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습에 대한 안팎의 비난이 북한에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세습이 아닌 집단지도체제 등장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당·군부 엘리트나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 가능성(미국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해외지도자 연구국장)이 높다는 것이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은 김일성→김정일→3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산 줄기'를 완전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 아들 중 한 명을 명목상으로 앞세운 군부 집단지도체제란 혼합형 지도체제가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새 지도체제의 성격

①극단적 성향→한반도 긴장 고조

북한에 들어설 새 지도체제에 대해선 김정일 체제보다 더 극단적인, 모험주의적 정권이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내부혼란을 막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김 위원장 때보다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할 수 있다"(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는 것이다. "기존의 획일적 통제 체제와 선군(先軍) 정치를 유지하고"(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냉전적 고립과 폐쇄적 정책을 추진하게 될 것"(유 연구관)이란 관측도 있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이럴 경우 북핵 문제가 계속 꼬이고 식량난이 심해져 주민 불만이 치솟을 것"이라며 "한반도 위기 지수가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②개혁·개방→한반도 안정

반대로 세습이 아니거나 '김정일 우상화'에 부담이 없는 새 지도부가 들어서 개혁·개방을 통해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서재진 통일연구원장). "북한의 새 지도부가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살려 주민 지지를 얻는 것이 한반도 안정에 최선의 카드"(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란 것이다. 그러나 "새 지도부가 경제 살리기에 실패하면 선군(先軍) 통치가 다시 득세하고, 군부의 강경 목소리가 커질 위험성도 함께 안고 있다"(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는 지적이다.

③극단·개방 혼재→한반도 정세 불안정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새 지도부는 군부 지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초반엔 강경 노선을 걷다가 생존을 위해 개혁·개방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80년대 중국도 개혁파와 강경파가 서로 다퉜다가 결국 개방으로 갔다는 것이다.

북한 유고시 우리의 대비는?

①"리더십 교체 대비 상세 매뉴얼 있어야"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남한에선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사전 준비가 거의 안 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관용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김일성 사망에 대비한 정부 대책이란 게 제목만 있는 한심한 수준이었다"며 "(김 위원장 유고를 대비한) 단계별 대응방안을 세밀하게 만들어둬야 한다"고 했다. "유고에 따른 북한 내부 혼란 관리를 위해 국제 공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새 북한 리더십과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접촉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매뉴얼이 대단히 정밀하게 준비돼 있어야 한다"(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는 것이다.

②"북한 내부에 개혁·개방의 싹을 준비해야"

전문가들은 북한에 유고 상황이 발생하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연착륙(軟着陸)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 지금부터 북한 내 엘리트들 사이에 개혁·개방의 싹을 키워야 한다(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의견들이 많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에는 외부 지원이 중단될 때 강경파가 득세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세와 관계없이 지원을 계속해 개혁 성향 엘리트들의 입지를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남북 간 경제 시찰단 교환 등을 추진, 북한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들에게 미리부터 자본주의를 보여주고(김근식 북한대학원대 교수) 지금부터 산업시설·도로 등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야 새 지도부가 들어섰을 때 남측의 대규모 경제 원조 제안에 호응할 가능성이 커진다(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주문도 있었다.

③"주민들에게 개혁·개방의 맛을 보여줘야"

북한 주민들에게도 개혁·개방의 장점을 꾸준히 보여줘야 주민들이 새 리더십에게 개혁·개방을 택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대북 지원을 옷이나 신발, 의약품 등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이기동 박사), "식량 지원 때 쌀 비중을 높이면 주민들이 새로운 시대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갖게 될 것"(남성욱 고려대 교수)이란 주문들이 나왔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남한의) 정치적 압박이나 조건부 지원으로 이끌어낼 수 없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해야 한다"(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24일 강연)는 견해도 나온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대북 방송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북한 주민들이 민주사회의 모습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디오 등으로 녹화한 남한 TV 프로그램들을 몰래 보는 주민들이 많은 만큼 이들을 겨냥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란 것이다. 여인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인들은 서독 TV를 통해 자유를 배웠다"고 했다.

④"중국을 지렛대로"

백진현 서울대 교수는 "미·중·일 등과 공동으로 북한 새 지도부가 개혁·개방을 하면 지원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미리부터 보내야 한다"고 했다. 조동호 교수는 "미·북이 적대관계일 때 강경파가 힘을 얻는 만큼 미국이 핵 문제에 대해 새 지도부를 유연하게 대하도록 우리가 미리부터 외교적으로 조율하는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중국이 새 지도부에게 개혁·개방을 강하게 요구하도록 대중(對中) 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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