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은 전쟁 중이다. 장안동 네거리에서 장한평 역까지 1㎞에 늘어선 유흥가가 몇 달 새 쑥대밭이 됐다. '안마' '마사지'같은 네온사인이 모두 꺼져버렸고 손님을 유혹하는 '삐끼(호객꾼)'도 자취를 감췄다. 이 거리를 폭격한 사람은 이중구 동대문경찰서장(46)이다.
7월 14일 취임한 이 서장은 1주일 간 주민들의 민원(民願)을 듣기 위해 관할구역을 돌아다녔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가 "서장님, 장안동 윤락업소를 없애주세요"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때 그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다고 한다.
20대 후반의 딸을 둔 주민은 "딸이 선보러 나갈 때마다 '장안동에 산다'고 하면 남자들이 다 싫어한다고 하더라. 장안동에 살아 우리 딸 혼사길 막히겠다"고 했다. 유흥가 주변 아파트 주민들은 "거리에 설치는 호객꾼들 때문에 가족끼리 외식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한 주민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까지 호객꾼들이 아버지나 대학생 아들의 팔을 붙잡고 업소 안으로 끌어당기며 '예쁜 아가씨들이 많으니 놀러가라'고 한다"며 "창피해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서장은 1주일 순시 후 동대문서의 최고 역점 업무로 '장한평 해체'를 정했다. 주변 반응은 당연히 썰렁했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수십 년 버텨온 윤락업소를 어떻게 없애느냐" "(서장이)진급에 너무 목매는 거 아니냐"는 냉소 분위기가 강했다.
이 서장은 1차로 경찰과 업주 간의 유착부터 끊었다. "윤락업소 단속 주무부서인 여성·청소년계(여청계)직원 10명 중 8명을 여성·청소년계 근무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물갈이했습니다. 형사과의 6명 팀장도 모두 교체했지요."
이 서장은 "경찰과 윤락업주와의 유착이 그간 장안동 윤락업소가 수그러들지 않은 원인 중 하나였다"며 "교체된 사람들이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경찰과 업주의 유착 가능성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단속을 하려 했다"고 했다.
내부를 단속한 이 서장은 곧바로 장안동 유흥가를 단속했다. 성 매매 현장에서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해 사복경관을 불법 안마휴게텔에 투입했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사복경관 9~10명은 2명씩 짝을 지어 다니며 호객꾼들을 유혹했다.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기도 했고 거리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현금 수십 만원을 뽑아 인도 한가운데서 돈을 셌다. 호객꾼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여기 좋은 데 있다던데"라고 떠보기도 했다.
이 서장은 "호객꾼들을 유혹해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증거물을 확보할 수가 없다"며 "경찰이 문 따고 들이닥칠 때쯤이면 업주와 여성들은 밖에 설치된 CCTV화면을 보고 성 매매에 쓰인 콘돔을 변기에 버린 후 건물 엘리베이터나 옆 건물로 통하는 비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간다"고 했다.
"단속 방법은 말해줄 수 없다"는 이 서장과 동대문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호객꾼의 안내로 업소 안에 들어간 경찰 1개조(2명)는 "피곤하니 난 방에서 잠시 쉰 뒤 서비스를 받겠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방안에서 귀 기울여 옆 방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휴대폰으로 업소 위치를 알린다. 밖에 있는 경찰 일행이 업소 주변으로 오면 '쉬고 있던' 사복 경찰 두 명이 업소 카운터로 가 경찰 신분을 밝힌다.
종업원들이 멈칫하는 사이, 경관 1명은 종업원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다른 한 명은 업소 출입구를 연다. 들이닥친 사복경찰들은 밀실의 성매매 현장을 목격하고 은박지에 싸여있거나 담뱃갑에 숨겨진 콘돔을 증거물로 확보하는 식이다.
이 서장은 "장안동 윤락가 성매매 여성들은 콘돔 수로 받은 손님 수를 업주에게 증명하기 때문에 반드시 콘돔을 보관한다"며 "하지만 이 같은 단속 방법은 수많은 단속 기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이 서장은 사람에 대한 단속에만 그치지 않고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윤락에 사용된 침대와 욕조까지 뜯어냈다. 단속이 된 윤락업소가 '바지사장'을 내세워 계속 영업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 서장은 "수억 원에 달하는 물품을 뜯어내면 웬만한 업소는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7월 말부터 장안동의 70여곳 불법 안마휴게텔 중 15곳을 단속했다. 압수 물품은 100t분량이다.
이런 단속 방식은 이 서장이 2006년 거제도 경찰서장으로 있을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불법 게임인 '바다이야기'가 전국을 휩쓸던 때였다. 주민 절반이 조선회사 직원이거나 그 가족인 거제도 주민들은 "남편이 게임 하느라 집에 안 들어온다"고 하소연했다.
이 서장은 "그 때 바지사장을 아무리 단속해도 소용없음을 알았다"며 "대신 당시 700만~800만원 하던 바다이야기 게임기를 다 압수하니 게임장이 하나 둘씩 없어졌다"고 했다. 장안동 윤락가의 싹쓸이식(式) 단속은 이미 거제도에서 효용이 입증됐던 것이다.
장안동 윤락업소 업주들은 결국 호객꾼을 없애고 번쩍이던 안마방 네온사인도 껐다. 영업을 못해 매출이 줄자 업주들은 이 서장을 향해 '사이코' '독종'이라며 욕을 해댔다. 급기야 지난달 29일 오후 한 불법 윤락업소 업주 최모(48)씨가 윤락업소가 입주한 건물 지하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최씨의 품속에서는 유서가 나왔다. "이중구, 당신 때문에 한 달 사이 살이 7㎏이나 빠졌다. 저승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흥분한 업주들은 장안동 경남호텔 부근 왕복 8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생존권을 보장하라" "단속을 중단하라"며 자정까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서장은 그러나 "업소를 차리기 위해 10억~20억원 투자하는 윤락업주들은 생계가 아니라 떼돈을 벌려는 것"이라며 "성매매는 도둑질, 마약처럼 있어서는 안될 범죄인 만큼 끝까지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장안동 유흥가가 네온사인은 꺼졌지만 여전히 영업을 하는 곳이 많지 않은가요.
"그렇습니다. 장안동 유흥가에 불법 안마휴게텔만 70여군데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15군데밖에 단속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은 곳이 훨씬 많아요. 제가 한 달 단속했는데 세상에서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쇠뿔은 단숨에 뽑으라는 속담도 있잖아요.
"발령 날 때까지 끝까지 단속할 겁니다. 제가 2006년에 거제도에 있을 때도 100여군데 바다이야기 게임장 잡는 데 7개월 정도 걸렸어요. 장안동 유흥가는 바다이야기 게임보다 훨씬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한두 달에 끝날 문제가 아니지요."
―혹시 이 서장이 이곳을 떠나면 장안동 유흥가가 부활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까. 경찰이 그러겠어요? (계속 추궁하자) 그건 다음 서장에게 물어봐야지요. 하하."
―혹시 장안동 윤락업소 업주들이 돈을 가져온 적은 없나요.
"(귓불이 빨개지며) 가져오라고 해보세요. 당장 체포해버리게."
이중구 서장은
1962년 경남 진주생. 경찰대 1기 행정학과 출신으로 2005년 7월 총경으로 진급했다. 2006년 3월부터 작년 1월까지 경남 거제서장을 지낸 뒤 올 3월까지 서울지방경찰청 1기동단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