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우군(友軍)없는 경찰청장

    입력 : 2008.09.03 22:50 | 수정 : 2008.09.05 08:57

    불교가 대통령보다 한수위에서
    대통령 '지혜'위한 법회를 연다면

    최보식 사회부장
    그날 밤 어청수 경찰청장은 몹시 상심했다고 한다. 여당 안에서조차 그의 경질 논의가 있었던 날이었다.

    촛불시위 때 그는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 '명박산성'으로 불린 컨테이너 바리케이드를 쳐 청와대를 지켰다. 그 청와대도 겉으로는 "경질할 사안은 아니다"고 흘리지만, 이는 불교계의 압력에 밀려 잘랐다는 소리를 듣기 싫은 것뿐이다. 그가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 줄 것을 바라는 눈치다.

    15만 경찰의 수장(首長)인 그는 이제 혼자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 몰렸고, 그의 '체력'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게 틀림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그의 우군은 없는 것 같다.

    그의 경질은 불교계 요구사항의 첫 줄에 나온다. 지난 6월 '경찰복음화 대성회' 포스터에 이를 주최하는 교회 유명 목사와 사진이 나란히 실린 게 알려지면서, 그가 '종교편향'의 표적이 됐다. 이 행사는 숨지거나 공무상 다친 경찰관들을 위한 모금도 곁들인 자리였다. 그는 "행사주최 쪽에서 내 사진을 실었을 뿐 나는 가톨릭 신자로 개신교 쪽이 아니다"고 했다.

    이런 그가 옷을 벗으면, 성난 불심(佛心)은 좀 진정될까. 그럴지 모른다. 불교계의 단합된 힘이 경찰청장을 퇴진시키고, 정권이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불교계 '위상'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세간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경찰청장의 옷을 벗기는 힘은 자비(慈悲)의 힘도, 연민의 힘도, 베풂의 힘도 아닐 것이다. 단지 세속 권력보다 위에 있는 힘으로 비칠지 모른다.

    불교계는 정권과의 대결에서 일부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김은 동시에 '잃음'이 될 수도 있다. 그 신자든 아니든, 불교는 우리의 영혼을 매료시키고 심취하게 만들어왔다. 마음을 다스리고, 집착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허상(虛像)이라는 가르침…. 이 대립상황이 계속되면 불교계는 더욱 세속적 힘을 얻을지 모르나, 대신 우리 마음속의 소중한 가르침들은 조금씩 옅어져 갈지 모른다.

    불교계의 집단 행동을 통해 우리는 현 정권의 기독교 '과잉'에 대해 충분히 알았고, 지도자급에 있는 '못 깨친 중생'에 대해 딱하게 여겼고 혀를 끌끌 찼다. 당초 적지않은 사람들이 불교 입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서서히 불교계의 '그릇'에 대해 다시 보는 중이다.

    불법수배자가 있는 조계사의 정문에서 현장 경찰관이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량을 검문한 사건도 그렇다. "불교계의 최고 어른에 대해 결례를…" 하는 불교계의 기분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경찰 수뇌부는 법에 따라 집행을 한 경찰관을 '정치적으로' 문책했다. 이로써 불교계의 '권위'를 세웠을지 모르나, 상식을 가진 세속의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불교계를 이처럼 거리로 뛰쳐나오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의 종교를 의식하게 만든 근본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 지금 정권은 "종교편향은 오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오해'하게끔 만든 숱한 사례들에 대한 깊은 각성이 없다. 정부 대변인을 통해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다. 종교편향 방지를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식이다.

    말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말만으로 소통 되는 게 아니다. 말 이전에 느낌과 진정성으로 알아차리는 법이다. 그러니 정부의 말들은 요란하게 많아도, 세간에서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이 난리가 났는데 대통령은 뭐 하고 계시느냐" 하고 묻는 것이다.

    가끔 우리 대통령의 '인색함'에 혀가 나올 지경이다. 정치란 주는 것이 얻는 것(與之爲取者)임을 아는 데 있다.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현장을 중시한다는 대통령은 왜 조계사를 방문하지 않는가. 혹은 왜 스님들을 청와대로 모셔 다과연을 베풀지 못하는가.

    차라리 불교가 어른스러운 입장에서 대통령 의 사과 요구 대신 '대통령의 지혜를 위한 법회(法會)'를 여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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