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 토요 인물기행] "그래도 훌쩍 떠날수 있어 난 자유인"

조선일보
  • 최보식 사회부장
    입력 2008.08.30 03:09

    에베레스트 남서벽 재도전하는 박영석
    ● 지난해 후배 2명 잃어… 내달 2일 출발
    "평생 같이 살 줄 알았는데… 전생에 죄가 많은지
    5000m이상은 神의 세상, 잠깐 갔다오는 것"

    2007년 에베레스트봉 남서벽 등정에서 두 후배를 잃었던 산악인 박영석은 남서벽 재도전을 위해 다음달 2일 출국할 예정이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가만히 뒤돌아 보니 계속 내 자신한테 도전해왔던 겁니다. 뭔가 이루면 꽉 찬 느낌이 있어야 만족하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 이룰 때마다 허탈한 것 같았어요."

    산악인 박영석(45)은 내달 2일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봉(8848m) 남서벽(壁) 원정을 또 떠난다.

    그에게 "욕망을 멈출 줄 알아야 안전하다(知止不殆·지지불태)"고 말하자, "그만 하라는 말은 마치 내 삶을, 내 인생을 멈추란 얘기로 들린다. 등반 행위가 내 삶의 100%인데"라고 답했다.

    "원정 꾸리면서 제 삶을 느끼고, 등반하면서 제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등반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앞장서서 후배를 이끌지 못하고 끌려 갈 때라고 느끼면 그만 둘 겁니다."

    그는 "히말라야 8000m봉 14개 중에 한국인이 만든 등반로가 하나도 없다. 난 가장 험난한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만들겠다"고 말하지만, 이 남서벽 원정은 그에게 두려움일지 모른다.
    작년에 이 남서벽 원정에서 그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절실했던 오희준·이현조 대원을 잃었다. 그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냈고 늘 원정의 파트너였다. 이들의 죽음으로 그는 한동안 술에 젖어 살았고, 환청(幻聽)을 들었고, 갈기머리를 잘랐고, 등반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

    그런 그가 다시 '악몽(惡夢)'의 길로 가려는 것이다. 이번 원정대에는 흔한 발대식도 없다.

    "평생 같이 살 줄 알았는데…. 인명재천이고 팔자라고 생각해도, 내가 채찍질하고 끌어주는 입장이어서 너무 못해준 게 많다는 회한이 들었습니다. 당시 오희준은 비상근으로 회사에 막 취직한 뒤라, '형 이제 나도 세금 냅니다'라며 좋아했는데. 그게 가슴이 아팠어요. 이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갑니다."

    그의 전성기는 2005년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급 14좌, 세계 7대륙 최고봉, 지구 3극점)을 달성했을 때다. 내가 혼잣말로 "그때 멈췄으면 성공적인 삶이었을 텐데"라고 하자, 그는 "성공적인 게 뭔데요? 하고 싶은 거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었다.

    "산악 그랜드슬램을 했으면 됐지 더 이상 할 게 있느냐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았습니다. 나는 한 곳에 도달하면 이미 가지 않은 다른 곳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삶과 죽음의 거리가 너무 가깝지 않나요?

    "누가 죽으려고 갑니까. 등반하기 전 베이스캠프에서 '라마제(祭)'를 지낼 때, 나는 한 번도 성공하게 해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무사히 내려와 다시 제(祭)를 올리게 해 달라고만 빌지요. 물론 돌발 사고는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전생(前生)에 지은 죄가 많나 보지요."

    ―삶과 죽음의 승부를 해온 입장에서, 하루하루 조직에 매여 밥벌이를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보입니까?

    "다 자기 할 일이 있지요. 그 일을 원해서 하는 삶은, 그 삶이 어떻든, 행복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하고싶지 않은데 하고 사는 사람을 보면 안됐고 불쌍해요. 설령 대통령 자리도 마찬가지이지요."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은 소수고, 먹고 살려면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할 때가 많지요.

    "저도 식솔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트레킹 사업도 했고, 상업 등반도 했어요. 그러다가 등산장비업체랑 계약해 월급을 갖다 주게 됐어요.등반이 지긋지긋 할 때도 있지요. 특히 대원들이 죽었을 때는. 그러나 내가 가장 잘 하는 게 이것이고…."

    ―당신은 훌쩍 떠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밥벌이나 일상에 매여 있지요.

    "훌쩍 떠날 수 있으니, 나는 자유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내 목숨을 담보로 여태껏 해왔기 때문인지 모르지요. 숱한 죽음을 보고, 사고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후배들을 잃고…. 어쩌면 이런 보상(補償)으로 마음먹었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산 등반이 자신의 삶 태도를 바꿔놓은 게 있나요?

    "히말라야 5000m를 넘어가면 풀 한 포기 없습니다. 신(神)이 거주하는 곳이에요. 그 높이에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그 넓은 산에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몇 가닥뿐입니다. 우리는 신이 허락해주는 시간에 잠깐 올라갔다 오는 것이지요. 이를 떠올리면 전율이 돋습니다.

    제가 TV에 잘 안 나가고, 사람들 모이는 자리에서 떠드는 걸 싫어하고, 강연 안 나가는 것은 신에 대한 겸손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숱한 원정에서 후배들을 죽이고, 신이 살려줘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걸 갖고 어디 가서 강연하겠습니까."

    ―정말 신이 있다고 믿나요?

    "저는 특정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다고 믿습니다."

    ―아주 먼 훗날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는 날, 묘비명(墓碑銘)에 어떻게 기록되기를 바랍니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죽은 뒤에 살아 있는 지인들이 뭐 느낀 대로 쓰겠지요."

    그러면서 반격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어 팔자 좋다 하겠지만, 제 역정(歷程)을 보면 쉰 적이 없어요. 1997년에는 8000m 봉우리 7개를 올라갔습니다. 산에서만 살았지요. 회사원 직업으로 보면, 365일 야근한 거나 똑같아요. 집에도 안 들어가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자랑은 아닌 것 같고, 사람 사는 진정한 행복이 무언 줄 압니까?

    한참 만에 입을 뗐다. "…이런 무거운 얘기는 자신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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