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월스트리트 울리고 웃긴 산은(産銀)

입력 2008.08.26 22:04 | 수정 2008.08.27 23:33

김기훈·경제부 차장대우
최근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한국의 산업은행이 화제였다. 예전에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눈도 꿈쩍 않던 월스트리트 주가는 산업은행의 미국 리먼브러더스 인수 소식에 희비가 엇갈렸다.

산업은행이 세계 4위의 투자은행인 리먼을 인수하려는 시도가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 20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뉴욕의 소식통을 인용해 산업은행이 리먼의 지분 50%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협상이 결렬됐다고 보도했다. 가격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은 뉴욕 증시에 악재였다. 금융주들이 일제히 하락했다.

하지만 다음날 로이터통신이 불을 다시 지폈다. 통신은 "리먼 인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산업은행의 입장을 태평양 건너로 타전했다. 리먼 주가는 장중에 16%나 급등했고, 금융주들이 함께 뛰면서 세계주가를 좌지우지하는 다우지수가 198포인트(1.73%)나 올랐다.

한국 뉴스가 월스트리트의 주가를 이렇게 많이 움직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만큼 리먼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11년 전 외환위기 당시 우리 정부 대표단이 '제발 대출 만기를 연장해 달라'며 미국 금융기관 임원들에게 고개 숙이며 사정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리먼은 1850년에 창립돼 골드먼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JP 모건 체이스 등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뉴욕의 세계적인 투자은행이다. 전세계 직원이 2만8500명에 이르고, 매출도 590억달러(약 60조원·작년 말 기준)나 된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많이 샀다가 부실이 급증했고, 한국과 중국, 유럽의 투자자에게 손을 내미는 신세가 됐다. 월스트리트 소식통은 "중동계나 중국계 자본은 안보 문제 때문에 의회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한국은 이러한 문제가 없다"며 한국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리먼의 주가는 지난해 11월만 해도 주당 67달러에 달했지만 지금은 14달러 수준으로 추락한 상태다. 국내 한 시중은행 임원은 "지분 50%를 인수하는 데 7조~8조원이 든다"며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6조원)에 비추어 보면 '헐값 인수'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리먼 인수는 위험과 기회가 팽팽한 초대형 빅딜(Big Deal)이다. 인수 후 숨겨진 부실을 떨기 위해 막대한 추가자금이 필요하고, 한국계 은행으로 이미지가 각인되면 미국계 고객과 직원이 이탈할 수 있다. 하지만 인수 후 경영정상화에 성공하면 전리품은 엄청나다. 서울과 월스트리트를 직접 연결하는 '금융고속도로'가 생긴다. 그러면 한국 금융기관들의 눈높이가 일제히 월스트리트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말로만 외치던 금융세계화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도 하지 못한 일이다.

한국은 지난 1월에 한국투자공사(KIC)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에 투자한 것을 계기로 세계금융의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메릴린치 인수 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공과(功過) 논란이 있지만, 최종 평가는 미국 경기가 회복된 수년 뒤에야 가능하다. 그만큼 메릴린치·리먼과 같은 초대형 빅딜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투자자의 결단(決斷)을 필요로 한다. 만년 금융 후진국인 우리가 요즘과 같은 가격에 세계 일류를 인수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리먼의 위험만큼 기회가 커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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