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금메달과 평준화

조선일보
  • 김대중·고문
    입력 2008.08.24 19:54 | 수정 2008.08.27 23:23

    올림픽 금메달은 찬양하면서 '경쟁' 부정하는 것은 위선
    경쟁 가득찬 세상을 바꿀수 없다면 아이들에 경쟁하는 법을 가르쳐야

    김대중·고문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새삼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금메달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금메달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나 국민이 없겠지만 유독 우리는 금메달에 올인하며 금메달만이 메달인 양 대접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텔레비전에 나와 '은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죄인인 양 고개 숙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올림픽의 정신은 참여에 있다고들 하고 패자(敗者)도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금메달은 일등을 말한다. 올림픽의 금메달은 세계 최고를 의미한다. '세계 최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금메달의 뒤에는 그 선수의 땀과 눈물, 역경을 이겨내는 인내, 그리고 관계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다. 무엇보다 같은 종목에 참가하는 수십, 수백명과의 경쟁에서 이겨낸다는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상당부분을 투자한 긴 여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으며 어떤 인생훈련을 치르고 있으며 어떤 사회적 제도적 틀에 묶여 있는가? 우리의 어린 세대, 젊은 세대는 평준화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들의 교육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은 평준화이고 그들을 지배하는 교육적 덕목은 평등이다. 경쟁은 못하는 사람을 밟고 넘어서는 '나쁜 것'이고, 돈 있는 계층에게만 유리할 수 있는, 반(反)인간적 장치라는 것이 평준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인생이, 인간의 삶이 언제까지나 평등하게 가고 너 나의 차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좋다. 경쟁은 힘들고 평준화는 편하다. 경쟁은 때로 각박하고 남을 밟고 넘어서는 작업이다. 비인간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경쟁 없이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은 그야말로 낙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평준화에 익숙해진 우리의 청소년들은 곧 경쟁이 판치는 엄혹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경쟁이 아닌 배정(配定)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학교를 나오자마자 금메달만을 숭상하는 세상의 인심에 직면하게 된다. 경쟁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전교조 선생에게서 교육을 받은 우리의 차세대들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평준화가 통하지 않는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때로는 '너 죽고 나 사는' 투쟁에 아무런 훈련이나 준비 없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경쟁도 훈련해야 한다. 경쟁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비무장인 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죄악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경쟁 없는 세상을 끝까지 보장할 수 없다면 아이들을 덮어놓고 무장 해제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평준화를 신봉할 것이면 금메달에 목숨 걸듯이 매달리는 세상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왜냐하면 메달은 바로 경쟁이고 금메달은 최고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평준화로는 금메달을 딸 수 없다.

    전쟁의 폐허 위에 오늘의 경제를 만들어낸 전후(戰後)세대들은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만 배웠다. 형제끼리도 경쟁했고 친한 친구끼리도 경쟁했다.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비열하기까지 했던 경쟁 속의 삶이었다. 오늘의 세계는 여전히 경쟁체제로 가고 있다. 경쟁을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고 평준·평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전교조식(式) 교육으로는 세계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구조에 있다. 지금 우리는 모순되는 의식의 단면들을 여기저기서 목도한다. 교육제도는 평준화에 머물면서 경쟁의 최고치인 금메달에 환호하는 이중구조가 대표적이다. 입으로는 반미(反美)를 부르짖으면서 자녀들은 미국에 못 보내 안달인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자유와 인권을 얘기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눈을 돌리는 이율배반의 현상이 버젓이 존재한다. 명색이 법치국가라면서 준법정신은 땅에 떨어진 세태가 판을 친다. 너무나 위선적이다.

    경쟁이 사람을 잘못 인도하는 경우가 없을 수 없다. 경쟁에는 여러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은 그것대로 극복해야지 교각살우(矯角殺牛)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에도 3·4위전이 있고 패자부활전도 있다. 금메달이 안 되면 3·4위전으로 가야 하고 패자부활전에도 나설 수 있다. 거기에도 경쟁은 있다. 앞서 가는 사람, 뒤처지는 사람이 각각 분수에 맞게 윈-윈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지, 앞선 사람을 끌어내려 뒤처진 사람에 맞추는 것은 양쪽 다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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