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에선 무슨 일이 [정정내용 있음]

조선일보
  • 이석우 기자
    입력 2008.08.22 03:13 | 수정 2008.10.24 17:28

    1094일째 천막 농성… 그동안 회사는 '거덜'

    지난 5월 11일 서울시청 앞 광장. 전국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소속 여성 노조원들이 서울시가‘하이 서울’축제를 위해 세운 철탑에 올라가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크고 작은 공장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공단지대. 20일 오후 9시쯤 검은색 철문 앞에선 각종 악기 소리에 맞춰 '바위처럼 살아가보자'는 노래와 "기륭전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구호가 흘러 나왔다. 대학생과 40·50대 중년 여성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곳은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회 기륭전자분회' 노조원들이 기륭전자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는 곳이다.

    농성이 시작된 것은 2005년 7월 5일. 이날로 1094일째를 맞았다. 농성을 이끌고 있는 김소연(39·분회장)씨와 유흥희(39)씨는 67일째 소금과 효소만 먹고 단식 농성을 벌이다 16일 병원에 입원해서도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농성 1000일째를 넘어서며 금속노조와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각종 사회단체와 정당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현재 노동계에선 기륭전자 공장은 '비정규직 투쟁의 본산(本山)'처럼 인식되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의 결과

    "우리 회사가 완전히 찍힌 겁니다. 노조, 시민단체들이 모두 몰려와 데모를 합니다. 노사 분규 3년 만에 회사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대법원 판결도, 경찰도 소용 없습니다. 단식 투쟁한다는데 누가 이깁니까."

    철문 틈새로 농성을 지켜 보던 기륭전자 김영창 이사의 말이다. 김 이사는 "3년 당해보니 노조가 중소기업 하나는 무너뜨릴 정도로 힘이 세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했다.
    이들이 점거 농성을 시작한 것은 비정규직 노조를 설립한 직후였다. 파견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설립된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 소속 70여 명이 '기륭전자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공장 1층 생산 라인을 점거했다.

    그해 9월에는 공장 점거에 나섰던 노조원 중 32명에 대해 파견 회사가 해고 통보를 하자 노조는 '부당 해고'로 개별적으로 소송 7건을 냈다. 이 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2007년 5월 "원고 회사(기륭전자)와 참가인(노조원)과의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는 해고를 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부당 해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판결은 지난 1~6월 사이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이어졌다.

    하지만 노조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김소연 분회장은 "회사 측이 불법 파견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한 데서 이번 사태가 시작된 것"이라며 "초기에 노조의 대화 요구에 성실히 응해 정규직화를 위한 노력을 했다면 사태가 이처럼 장기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5년 10월 기륭전자에 대해 노동부 특별 근로 감독이 실시돼 불법 파견 판정이 내려졌다. 법인과 대표자가 각 500만원씩 벌금을 냈다. 정규직 근로자와 파견직 근로자가 같은 생산 라인에서 '혼재 근무'를 하고 있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회사 측도 이 부분에 대한 잘못은 인정하고 있다.

    이후 회사는 이런 문제점을 고쳐 완전 도급 형태로 전환했다. 4개 협력회사에 조립 생산라인 일을 맡겼지만 노조원들은 협력회사 입사를 거부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요구했다.

    기륭전자는 위성라디오와 내비게이션 등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2004년 매출 1711억원, 220억원 흑자를 냈다. 그러나 노조 파업으로 인해 지난해 매출은 447억원으로 급감했고, 269억원 적자가 났다. 노사 분규 3년 동안 회사가 거덜난 것이다.

    그사이 대주주는 아세아시멘트에서 세 번이나 바뀌었고, 대표이사는 네 명이 바뀌었다. 노조는 회사 정문 앞 천막 농성 외에도 대주주와 대표이사가 바뀔 때마다 사무실, 집, 고향을 찾아가 데모를 했다. 지난 5월 구로역과 서울광장 철탑에 올라가 고공 시위를 벌이고 6월 광화문 도심에서 3보1배 시위를 벌인데 이어 7월에는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점거 투쟁을 벌여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결국 회사 측은 지난해 10월 공장의 모든 생산 라인을 아예 중국 상하이로 옮겼다. 현재는 연구소와 영업 부문만 남아 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근로자 70여 명도 희망퇴직 형식으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분회장은 전문 노동 운동가 출신

    대법원이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사안인데도 노동계의 대표적인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된 데는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다른 노조와 시민단체, 정당까지 개입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륭전자 분회를 이끌며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소연씨는 IMF 금융위기 당시(1997년) 부도가 났던 갑을전자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김씨는 2000년 9월 1일부터 부도난 갑을전자의 대표이사를 상대로 파산 위로금(6억원)을 받기 위해 155일간 본사 점거 농성을 벌였던 인물이다.

    김씨는 2001년 9월 '서울민주노동자회'라는 이적단체를 구성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어 김씨는 2002년 6월 기륭전자의 협력업체에 입사했다.

    1000일 넘게 이어져 오던 기륭전자의 노사 분규는 지난 14일 회사 측과 노조 측이 합의안을 마련하면서 극적인 타결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당시 합의안은 기륭전자측이 협력회사를 설립하고 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노조원 10명이 직업훈련을 거쳐 취업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생활비로 농성 중인 노조원에게 월 80만원씩 생계비를 지급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서명 당일 회사와 노조 측이 보상금 문제로 의견 차이를 보여 결렬됐다.
    ♣ 바로잡습니다
    ▲본지 8월 22일자 A11면 '기륭전자에선 무슨 일이' 제하의 기사와 관련, 기륭전자가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한 것은 노조파업과 무관하며, 적자의 주된 이유는 노조파업이 아니라 다른 경영상 이유인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또한 기륭전자 노조는 노사합의가 결렬된 주된 이유는 보상금이 아니라 재고용 및 고용보장 기간의 문제 때문이었으며, 김소연 분회장이 2000년 당시 부도난 갑을전자를 상대로 농성한 것은 위로금이 아니라 퇴직금,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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