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강풍 뚫고 헬기 착륙훈련… 통제실 10명중 9명이 여군

입력 2008.08.09 07:43 | 수정 2008.08.09 11:22

최희동 함장
지난달 30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 진주만 미 태평양함대 부두. 미 해군의 최신예 9000t급(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인 ‘채피(CHAFEE)’가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을 세차례 울렸다.

채피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7~9일만에 한반도로 긴급 출동해 미 7함대 소속으로 한국군을 지원하게 돼 있는 미 해군 함정중 하나다. 1300㎞ 이상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족집게처럼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수십발을 갖고 있어 유사시 북한 지역내 전략 목표물을 공격한다. 채피는 지난 3월 미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 전단 소속으로 한미 연합 독수리 연습에 참가한 뒤 강원도 동해시를 친선 방문하기도 했다.

채피와 한국과의 인연은 이 뿐 아니다. 함명(艦名)은 6·25전쟁 때 해병대 중대장으로 참전했고 미 해군성 장관을 지낸 고(故) 채피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지난 4월엔 미 해군 주요 전투함정중 처음으로 한국계인 최희동(41) 중령이 이 배의 함장이 됐다. 최 중령은 인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채피는 지난달 31일 끝난 림팩(RIMPAC·환태평양) 2008 훈련에 참가했던 우리 해군의 구축함 문무대왕함과 양만춘함을 뒷바라지하는 ‘초청함’ 역할도 했다. 림팩은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 일본, 영국, 호주 등 10개국 해군이 참가해 2년마다 벌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합동 해군 훈련이다. 해군 환태평양훈련분대 사령관 박래범(49) 대령은 “이번 훈련에서 최 함장 등 채피 승무원들의 적극적인 지원 덕택에 고생을 덜했다”고 말했다. 미 태평양사령부 고위 관계자는 “최 함장과 채피는 한미 군사동맹의 교량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채피가 2박3일의 훈련 일정으로 진주만 해군기지를 출항할 때 기자는 한국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미국의 최신예 함정에 동승해 훈련 전(全)기간을 취재했다. 종전에 미 이지스함들은 항구에 정박했을 때에만 단편적으로 국내 언론에 공개됐을 뿐이다.

채피는 취역(就役)한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12억 달러(약 1조2000억원) 짜리 첨단 함정이다. 2박3일 동안 채피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정예 함정으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30분쯤 하와이 남서쪽 80여㎞ 해상에서 채피에 탑재돼 있는 SH-60B ‘시호크(Seahawk)’ 헬기는 함정 뒷부분 비행갑판에서 2시간30분 동안이나 수십 차례 뜨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고유가(高油價) 때문에 기동훈련이 대폭 축소된 한국군으로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장면이다. 특히 시속 60여㎞의 강풍과 칠흑같은 어둠 속에 파도가 높이 2~3m로 일어 헬기와 배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훈련이 계속돼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MK-46 어뢰와 ‘헬파이어’ 미사일로 적 잠수함이나 소형 함정을 공격하는 SH-60은 3~4m 높이에서 떨썩 주저앉듯이 갑판에 내려앉았다가 떠오르기를 되풀이했다.

온갖 작전정보가 종합돼 채피의 두뇌이자 심장부에 해당하는 전투정보센터(CIC)에서의 훈련장면도 이례적으로 공개됐다. 가로·세로 2m 크기의 대형 스크린 2대에는 가상 적 항공기와 대함(對艦)미사일이 한꺼번에 3,4대가 채피를 향해 달려들자 이지스 전투체계 컴퓨터가 위협 순위를 스스로 판단, SM-2 및 ESSM 대공(對空)미사일, 구경 20㎜ 근접방공시스템 등으로 이들을 격추하는 상황이 각종 기호로 표시됐다. 채피의 이지스 전투체계 레이더는 1000㎞ 밖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발견하고, 한꺼번에 18대의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다. 구경 127㎜ 함포탄 12발과 구경 12.7㎜ 기관총탄 1200발을 실제로 쏘는 훈련도 이뤄졌다.

훈련 기간중 ‘대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이라 불리는 위기 대처 훈련도 인상 깊었다. 적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화재와 침수 등에 대비한 소화(消火) 및 방수(防水) 훈련이다. 

지난달 31일 오전 7시40분쯤 첫번째 미사일이 함정 오른쪽 뒷부분을 강타, 식당 등에서 불이 나 6명의 인명피해가 생기는 상황이 가상으로 벌어졌다. 이내 방화복과 산소통 등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불을 껐다. 적 미사일은 세 차례나 채피를 가상으로 타격했고, 이 가상 상황에 따라 승무원들은 불을 끈 뒤 함정에 난 구멍으로 물이 새들어오는 것을 막고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훈련을 2시간 가까이 했다. 함장 최 중령은 “2차대전부터 베트남전, 이라크전 등 수많은 실전에서 터득한 노하우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해군에 비해 여군이 훨씬 많은 것도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전체 승무원 300명 가운데 여군은 10%가 넘는 40여명에 달했다. 장교 27명중 6명이, ‘대미지 컨트롤’ 훈련 때 종합상황실인 CCS(Central Control Station) 요원 10명 중 9명이 각각 여군이었다.

모병제인 미국에서 이들이 해군을 지원한 이유도 궁금했다. 장병 10명중 9명 꼴로  “세계 여러나라를 다녀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작전장교 푸게이트(34) 대위는 “9년간 21개국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장병 후생복지에도 신경을 많이 써 음식 메뉴가 50~60여종에 달해 21일을 주기로 같은 메뉴가 나온다고 한다.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배에서 나오는 각종 쓰레기 중 태울 수 있는 것은 소각하고 플래스틱은 압축기로 납작하게 찌그러뜨려 보관했다가 항구에 도착하면 처리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미 해군의 9000\급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인‘채피(CHAFEE)’. 본지는 한국 언론으로서는 최초로 2박3일간 채피에 동승 취재했다.
미국 최신예 이지스함인 채피를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2박3일간 동승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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