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무겁게 달고 흥행을 가볍게 날다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08.08.08 03:14 | 수정 2008.08.08 09:11

    [조선일보 영화팀의 금주의 선택]
    배트맨 '다크 나이트' … 평단과 관객 모두 '기립 박수'

    조커
    예술과 산업 양쪽으로부터 이토록 환호를 받은 블록버스터가 또 있을까. 영화로 만들어진 여섯 번째 배트맨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6일 개봉). 평단에서는 앞다퉈 '걸작'이라는 헌사를 바치고 있고, 시장에서는 모든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할리우드 역대 흥행 1위(타이타닉·6억 달러·1997)를 향해 질주 중이다. 미국 개봉 18일 만에 4억 달러(약 4000억 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속도다.

    사실 이 유례없는 찬사와 스피드에서 솔직히 가장 경이로운 대목은 미국 '대중'의 열광이다. '다크 나이트'는 관객의 존재론적 고민과 지적 모험을 동시에 요구하는 작품. '트랜스포머'나 '아이언맨' 같은 여름 대작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는 관객에게는 "속았다"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철학적 블록버스터다. 지난해 많은 평론가들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오스카 수상을 지켜보며 미국 영화의 대 약진을 이야기했지만, 이제 할리우드에서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텍스트의 질적 도약 뿐만 아니라 이런 예술적 블록버스터에게도 소리 높여 환호성을 지르는 '대중'의 탄생이 아닐까.

    크리스토퍼 놀란(Nolan)이 연출한 이 어둠의 기사(Dark Knight)는 단숨에 악당을 해치우고 쾌도난마로 문제를 해결하던 기존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회의하고 사색하는 햄릿이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 박사이며, 마귀에게 시험 받는 구약성서의 욥이다. 경찰·검찰·법원·시청 모두가 부패해버린 고담시에서 악을 퇴치하기 위해 더 큰 악을 불러들이는(혹은 스스로 악이 되어버리는) 존재의 내면을 치밀하면서도 박진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빼어난 텍스트에는 늘 입체적 해석이 뒤따르는 법.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미와 추의 모호한 경계를 묻는 미학적·윤리적 질문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한 현실 세계 정치에 대한 풍자와 비판까지, '다크 나이트'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풍요로운 텍스트다.

    이 영화엔 기술과 연기 양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대목이 있다. 하나는 아이맥스(IMAX) 카메라 기술을 적용한 첫 장편 상업 영화라는 점. 또 하나는 거의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는 조커<사진> 역 고(故) 히스 레저(Ledger) 연기다. 바퀴 18개 달린 길이 12m짜리 트레일러가 수직으로 뒤집히는 장면을 포함, 도입부 은행 강도, 배트모빌(Batmobile) 추격 시퀀스 등 6개 장면 30여 분의 아이맥스 촬영분량은 이 영화가 존재론적 고민뿐만 아니라 순수 엔터테인먼트에도 엄청난 애정을 쏟고 있음을 놀라운 해상도와 선명도의 화질로 입증한다. 아이맥스 전용 극장에서 즐긴다면 한층 더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히스 레저. 이 영화 촬영을 마친 3개월 뒤인 지난 1월 22일 스물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내. 볼과 이마에 덕지덕지 회칠을 하고 입술에는 루즈를 바른 채 혀를 날름거리던 이 희대의 배우는 배트맨 속 영웅과 악당이 사실은 서로의 도플갱어(Doppleganger·분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설득력으로 증명한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캐릭터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줄거리


    백주에 고담시 중앙은행이 습격 당한다. 범인은 조커(히스 레저). 거액의 현금을 탈취한 이 천하의 악당은 팔코니 조직의 우두머리 마로니(에릭 로버츠)를 찾아가 거래를 시도한다. 함께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을 제거하자는 것. 낮에는 백만장자 브루스 웨인으로 신분을 숨기고 있는 이 박쥐 인간은 청렴과 능력을 지닌 지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르트)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배트맨 역할의 은퇴를 꿈꾼다. 하지만 가만히 눌러 앉아 있을 조커이겠는가.



    ▶전문가 별점

    · 예술과 오락, 시각 미와 철학적 내공, 영웅과 악당,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절대 균형! ★★★★☆  황희연·영화 칼럼니스트

    · 철학적 대사와 영웅 오락 영화의 조화. 이래저래 눈을 떼기 어렵다. ★★★★
    이상용·영화평론가
    이 어둠의 기사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여름 영화는 아니다. 관객의 지적 모험과 존재론적 고민을 동시에 요구하는 철학적 블록버스터. 히스 레저와 크리스천 베일의 탁월한 연기를 통해 조커와 배트맨이 서로의 도플갱어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수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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